2024년 | 241123-은평둘레길 봉산구간 일부(제331차 정기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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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작성일24-11-25 14:57 조회1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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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
1000 새절역 3번 출구
1025 숭실중고등학교
1045 편백정
1100 봉산 전망대, 간식(김일동 기장이 준비)
1158 봉산정(209m)
1247 수국사로 하산
1330 구산역 인근 회식장소
1345 산장인사
1450 종료
[참가자]
곽성균, 김시영, 김용수, 김일동, 남궁완, 문주일, 박희수, 서병일, 손정수, 손훈재, 송경헌, 신학수, 유인식, 윤지현, 윤현로, 임춘봉, 지용붕, 최택상, 한성협, 홍기창(20명),
[산장 인사]
산우회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특히나 맛있는 아침 간식 준비하여 주신 김일동 회장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2024년 산행도 다음 달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산행에 많은 참여 기대합니다(산우회 단톡방).
[산총 인사]
오늘 겨울 날씨답지 않게 너무 맑고 따스하여 아주 적당하고 즐거운 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석해 주신 회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공지해드린 12월 8일 총선 산행에 모쪼록 많이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총산 산행 참여시 집행부에서 당일 회비 4만 원 중 2분의 1을 지원하고자 하오니 부디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11월 30일까지 참석 신청해 주시고 경비 2만 원을 총무 앞으로 송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산우회 단톡방).
[낙 수]
9년 전인 2015년 11월 28일 제 224차 정기산행은 구파팔역을 출발하여 서울 둘레길 7구간인 앵봉산~봉산 구간을 3시간 50분 동안 산행하고 증산역으로 하산하였다는 고 eQ의 산행기록과 산사의 사진이 남아있다. 그 날은 산행 도중에 내린 눈이 산길을 덮은 낙엽 위에도, 봉산정 지붕 위에도 희끗희끗 쌓였다.
금년은 늦더위가 지속하여 가을이 실종되자 녹음은 단풍으로 채색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바로 갈색으로 말라버리고 만듯하다. 불광동 쪽에서 만나는 산행 약속 시간에는 지각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에 이날 역시 10시 15분에야 새절 역에 내려서 혼자 숭실중고등학교 방향으로 급히 올라갔다. 구산 근린공원 앞에 이르러서 혹시 지름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길 우측의 공원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 길로 조금 올라가자 철늦은 단풍이 곱게 물든 숲 사이로 오전의 밝은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고 있었다.
공원 길을 제법 올라가서 근린공원 끝에 이르자 아파트가 나타났다. 아파트 경내를 돌아 언덕길을 내려오니 숭실중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였다. 지름길인 줄로 지레 짐작하고 근린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한참이나 우회하는 동시에 본의 아니게 단풍 구경까지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
기왕에 20분 이상 늦어졌으니 천천히 일행을 뒤따라가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걸음걸이에도 여유가 생긴다. 현산총, 전산총과 통화를 하면서 각자의 현 위치를 확인하니 일행이 가까운 거리에 있음이 분명하다.
20분 이상 전망대에서 쉬고 있는 일행을 뒤늦게 따라잡으니 만남은 안도감을 주고, 지각은 쑥스러우며, 이곳까지 이르는 일정표 사진을 찍지 못했음은 찝찝하다-잠시나마 휴가를 얻은 듯 쾌재를 불렀을 전속 이정표 “모 골매” 학형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자 마음은 과외로 불편해진다. 그러나 간식빵을 건네주는 김일동 기장(동기회장)의 손길은 정겹고, 인사로 반기는 친구들의 몸짓은 친근하고, 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식없이 우러나는 행동들은, 맑고 포근한 초겨울 하늘 아래 전망대 맞은편으로 펼쳐진 인왕산과 중첩한 북한산 능선처럼, 명징하고 섬세하다.
전망대에서 40분 가량 메마른 11월의 스산한 8부 능선길을 걷자니 해발 209m의 봉산 봉수대와 봉산정이 보였다, 봉산은 은평구 구산동과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형상이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산(龜山)으로 불리다가 봉화대를 설치하자 봉산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된 듯하다. 구산이라는 옛이름은 현재 구산동이라는 이름 속에 남아있다. 봉산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서오능이 있는 앵봉산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봉산에서 휴식한 후에 12시 25분경에 하산을 시작하여 20분 후에 봉산의 동쪽 기슭에 있는 수국사(守國寺)로 내려왔다, 수국사는 조선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德宗으로 추존)가 2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를 봉산의 북쪽에 있는 효경산에 매장하고 그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조5년(1459년)에 세운 사찰이다.
수국사의 대웅보전은 108평 넓이의 7간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건물로, 1,900년에 고종의 시주로 중건을 한 후에 1992년에 청기와 지붕을 제외하고 건물 전체를 33kg의 금박으로 입히는 개금 불사를 함으로써 국내 최대의 황금사찰이 되었다. 일본의 개금 사찰인 긴카쿠지(金閣寺)가 25평에 불과하니 수국사의 규모가 짐작된다.
참배를 위하여 법당에 들어가니 제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는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가 정각을 이루어 여래가 된 후에 이를 의심하는 5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하는 초전법륜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고프고 무릎 아픈 중생에게는 빨리 회식장소에 도착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에 선행하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마명보살은 대승기신론에서 이러한 중생의 마음이 곧 법이라고 설하였으니, 그런 줄이나 알면 저 황금덩어리도 부질없는 헛도깨비임을 깨닫는다.
-중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