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 241005-설악산 흘림골~등선대~오색약수(특별산행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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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작성일24-10-18 16:58 조회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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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
0730 동서울터미널 출발
1021 흘림골 탐방 지원센타(675m)
1052 여심폭포
1110 등선대 쉼터 도착(흘림골 입구 1km 지점)
1119 등선대(1,002m) 도착
1126 등선대 출발
1150 점심
1227 출발
1231 십이폭포, 십이탕계곡
1305 용소 삼거리
1330 흘림골 일방통행지점 도착(흘림골 입구 3.1km, 주전골 입구 2.7km)
1357 선녀탕
1410 오색석사(성국사) 통과
1422 오색약수
1430 식당에서 해갈 음료수 마시며 휴식
1705 동서울행 버스 승차
2030 동서울 터미널 도착, 갈증 해소
[참가자]
곽성균, 김시영, 김일동, 김정식, 서병일, 송경헌, 진영산, 홍기창
[낙 수]
1. 나이 60대 중반대까지만 해도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거쳐서 대청봉에 오르거나 설악동 공원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비선대, 마등령, 공룡능선, 무너미고개, 천불동, 설악동으로 회귀하는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설악산의 장거리 코스일지라도 언제라도 가능한 등산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60대 후반에 이르자 장거리 등산을 하면 무릎이나 허리에 통증이 느껴져서 해가 갈수록 체력적으로도 무리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즉 젊은 시절에는 체력은 어느 정도 보장된 상수(常數)와 같아서 마음만 먹으면 어느 산이든지 오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등산은 대체로 의지의 함수(函數)였다. 나이가 든 후에는 체력이 점차 약해지는 까닭에 등산(에 대한 의지)은 오로지 체력의 함수로 변했다.
그 결과 설악산을 가더라도 산행 목표지는 체력에 맞추어서, 금강굴이나 토왕성 폭포, 울산바위 등 설악산의 중턱이나 비교적 낮은 능선 또는 봉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내가 현재 지니고 있는 체력적 조건이 등산에 대한 내 정신(의지,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1학년 때 들은 마르크스 특히 카를 만하임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도 진실의 일면을 포함하는 듯하다.
2. 우리 동기회는 코로나 대유행 때문에 2022. 10. 23.에야 졸업 50주년 기념 산행으로 2박 3일간 정동진, 월정사 선재길, 낙산사 일대를 하이킹 또는 관광을 하고,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설악산 남쪽에 있는 주전골~용소폭포를 왕복하는 하이킹을 하였다. 절정의 단풍이 아직 남아있는 시기여서 주전골은 설악산의 어느 계곡 못지 아니한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었다.
용소폭포 삼거리에서 주전골을 대표하는 용소폭포까지 올라갔다가 하산하면서 일부 친구는 다시 용소폭포 삼거리에 이르러서 흘림골 방향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흘림골은 입구쪽에서 미리 예약하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3. 그로부터 2년 후인 2024년에 70대 장년의 가을이 또다시 빠르게 달려왔다. 청명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백색 화강암 암봉과 골골이 색색의 단풍으로 가득한 계곡, 웅대한 폭포, 가파른 계곡을 따라오다가 간혹 폭포 앞에서는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길게 이어지는 편안한 철계단 등 설악산의 가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니 마음은 여전히 설렌다.
일찍이 고 이규도 학형이 주창한 “오지십설”(5월에는 지리산, 10월에는 설악산)을 나이가 들도록 지속하고자 하는 산우회 친구 몇몇은, 금년 가을에는 설악산의 흘림골을 등산하는데 뜻을 모았다. 등산의 난이도나 소요시간에 무리가 없고 서울에서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는 것과 재작년의 주전골 하이킹의 미진함을 채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다.
송경헌 산우회 고문(22회 산우회의 영원한 산행대장이다)이 흘림골 산행 의사를 밝힌 위 8명의 참가자를 위하여, 성수기인 10월 5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동서울 터미널을 출발하여 당일 오후 4시 50분에 귀경하는 설악산 오색행 시외버스 왕복표 8장을 어렵사리 예매하였다.
가을 설악산 산행이 확정되자 그 설렘은 전날 밤에 배낭을 꾸리면서 더욱 진하게 마음을 흔들었는지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5시 40분에 울리도록 세팅해 둔 휴대폰의 알람 기능만 무용해졌다.
4. 서울~속초간의 44번 국도는 한계령 휴게소를 지나면 내리막 구불길을 달리다가 오늘 산행의 기점인 해발 675m인 양양군의 흘림골 입구 정류장에서 정차한다. 흘림골의 북쪽은 설악산 구역이고 그 남쪽은 점봉산이다. 그러니까 44번 국도는 한계령에서부터 설악산과 점봉산을 가르는 계곡 중턱을 따라 개설된 도로이다,
흘림골 입구에서 출발하여 약 30분간 상대적으로 평탄한 산길 800m를 오르면 숲에 조금 가려진 기묘한 형태의 폭포가 보인다, 바로 여심(女深)폭로이다. 폭포의 형태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사실적어서 누구든지 폭포의 명칭을 바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수량이 적은 물줄기가 가느다랗게 흐르는 점이 더욱 관능적으로 보인다. 망측한 연상을 빨리 떨쳐버리기 위해서 사진을 한 장만 찍고 얼른 자리를 뜸으로써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도학자의 윤리성을 유지하였다.
여심폭포를 지나서 해발 1,002m인 등선대에 이르는 300m 구간은 무려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경사도가 대단히 심한 깔딱고개 계단길이다. 당초에 흘림골에서 기껏 327m만 오르면 오늘 산행의 최고 지점인 등선대에 도착할 수 있으니, 흘림골 산행은 수서역에서 거리로는 약 3km, 산행 시간은 1시간 남짓 걸리는 해발 293m의 대모산을 등산하는 정도겠지라고 판단하면서 약간 얕잡아 보았던 것은 사실인데, 이는 오만한 속단이었다.
풍광은 더욱 말할 필요가 없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저잣거리의 표현이 있듯이, 해발 1,002m에 불과한 등선대지만 그래도 국립공원 설악산의 한 봉우리이다. 등선대에서 조망하는 풍광은, 늘 희뿌연 매연 아니면 황사 속에 남산, 안산,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등을 배경으로, 백색의 아파트 숲과 빌딩이 전부인 강남의 대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과 비교한다는 것은 대모산에게는 난처하고 등선대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등선대의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점봉산 능선의 정상 부근은 오전의 가을 햇살 아래 좌우로 균형이 잡힌 둔각의 이등변삼각형을 이룬 채 부드럽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점봉산은 20년 전인 2004년 5월에 산우회원과 부인 37명이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진동리에 있는 곰배령 꽃님이네 집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동안 올라간 추억이 어린 산이다, 점봉산은 이미 1993년에 유네스코 생물권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산으로, 우리 일행이 다녀온 이후로, 십수 년 전부터 곰배령~점봉산 구간은 아예 등산로 자체가 전면적으로 폐쇄됨에 따라 동기들이 부인들과 함께 오른 점봉산은 더욱 귀중한 추억이 어린 산이 되었다.
등선대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무수한 능선과 봉우리 가운데에 오전 중에 통과한 한계령 휴게소가 첩첩한 산속에서 비교적 뚜렷하고, 그 뒤쪽의 왼쪽부터 귀때기청, 한계령 삼거리 안부, 끝청, 중청, 대청 등 서북능선의 봉우리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유장한 자태를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이 아무리 주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같은 산을 보면서 각자가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그 산을 직접 등산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에 크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대여섯 번은 오른 서북능선에서 뿜어냈던 내 거친 숨결과 흘린 땀방울, 남겨진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지금 이 순간 등선대에서 서북능선을 조망하는 감회는 심원하면서도 가슴 벅차다.
등선대의 서쪽 방향에는 44번 국도 좌측으로 삼형제봉, 주걱봉, 가리봉을 잇는 가리능선이 보다 낮고 아담하게 흐른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화강암의 기묘한 봉우리들이 저마다 눈부신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 조화롭게 배치된 중에 칠형제봉과 집개봉이 뚜렷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아, 설악산은 어느 봉우리, 어느 계곡이든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여전히 보고 싶은 무궁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이다.
5. 등선대를 내려와서 칠형제봉을 코앞에 둔 채 이리저리 급경사 지대를 지나면서 8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를 발견하였다. 특별하게도 이날은 동기들과 등산을 시작한 이래 27년 만에 처음으로 특수음료가 없는 점심을 먹었다. 그것도 8명씩이나 동행한 절경의 설악산에서!
그러고 보니, 조지훈의 “주도유단”이라는 수필에 나오는 표현에 따르면, 일행 중 2명은 부주(不酒)이고, 1명은 외주(畏酒) 내지 기주(忌酒) 상태이며, 한 두 명을 빼고는 음주 연륜이 오래됨에 따라 주도(酒道)의 급수가 반주(飯酒) 수준 또는 그 이하로 강등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수음료 섭취에서조차 격세지감을 느낀다.
6. 등선대 아래쪽은 등선폭포와 십이폭포로 이어지는 십이탕계곡이다. 갈수기에 수량은 다소 부족한 모습이고,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진 금년 가을이고 보니 계곡은 아직 짙은 녹색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렇지만 십이탕계곡은 작은 천불동 계곡이라고 부르더라도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수려한 계곡이다. 자주 나타나는 철계단을 거침없는 발걸음을 쿵쿵 내디디면서 편안하게 내려오니 어느덧 용소폭포 삼거리에 이르렀다. 용소폭포는 이곳에서 불과 0.5km 거리에 있지만 재작년의 기억만 떠올린 채 그냥 통과하고 말았으니, 나로서는 차마 못할 짓을 한 것이다.
7. 용소폭포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오면 흘림골 방향으로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과 안내소 건물 및 아취형 문이 있다.. 이곳부터 그 아래쪽은 재작년에 다녀간 주전골 계곡이다. 계곡은 좀 더 넓게 열리고 곳곳에서 녹색의 소를 이룬 계류는 계곡 양편의 숲의 반영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쉬어가면서 널찍한 암반이나 흰 모래 또는 자갈 위로 흘러간다. 계류의 수량히 좀더 풍부해지고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계단이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가던 중에 문득 숲길이 나타났다. 주전골이 끝나고 오색약수에 가까이 이른 것이다.
숲길을 걷던 중, 길 옆에 쌓은 높은 축대 위로 몇 개의 기둥이 팔작지붕과 다포를 떠받고 있는 한옥 건물의 일부가 보였다. 2층만 남은 석탑과 7간 요사체 건물 1동이 널찍한 마당을 앞에 두고 덩그렇게 자리잡은 오색석사(성국사)의 쇠락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오색약수 입구까지는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더욱 경쾌한 발걸음으로 제작년에 일행이 점심식사를 한 오색약수 앞의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2시 22분으로, 흘림골 입구를 출발한 지 4시간 만이었다.
9. 이날의 날씨는 등산을 하기에 적절하였고, 무엇보다도 단 하루의 일정으로 무리하지 않으면서 빼어난 풍광을 간직한 설악산의 흘림골을 참가자 8명 전원이 종주하였다는 점에서 규산회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산행이었다. 밤 8시 30분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마신 시원한 생맥주는 오늘의 산행의 즐거움을 대변해 주는 맛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에 의하면 “흘림골”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계곡에 안개와 구름이 많이 끼어서 흐린 날이 많기 때문에 흘림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어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더 이상 탐구할 마음이 없어졌다. 서북능선의 “귀때기청”이라는 봉우리 이름만큼이나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