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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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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작성일13-09-13 09:23 조회1,077회 댓글0건

본문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백)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2013년 다해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

복음: 루카 6,39-42

    < 내면의 드라큘라 >           

군대 있을 때 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8개월 만에 전방에서 내려와 춘천으로 군견 수송을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옆에 지나가는 유치원 아이들과 유치원 선생님을 보다가 신호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트럭에 받힌 작은 프라이드 자동차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 때 들었던 생각은 그 자리를 뜨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뺑소니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러나 그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정하고 회피하고 그래서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됩니다. 

사람 안엔 누구나 보여지기 원치 않는 수치스러운 면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수치스러운 것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기제들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방어기제’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 한다든가,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현실을 부정한다든가, 남의 탓을 한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잘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든가, 그런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공격한다든가, 그냥 울어버린다든가 하는 등의 수많은 기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기제들을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그런 존재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회피하고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현실자아와 이상자아를 말하는데, 내가 이상적으로 만들어 낸 자아와 현실적인 그에 못 미치는 자아의 갭이 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려는 인간 심리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잘 보는 사람들을 질책하시는데 실제로 이는 우리 모습인 것입니다. 내 눈에 들보가 있어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남의 눈에도 티가 있는 것을 보려하는 것이 곧 자신의 들보를 보지 않으려는 자기 합리화이고 방어 기제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내 자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부끄러운 상처나 열등감을 내가 밝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인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마더 데레사가 젊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어느 빈민굴을 방문했습니다. 한 청년을 만났는데 씻지도 않고 방도 청소하지 않아 돼지우리 저리가라 할 만한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방엔 램프가 있었지만 그 청년은 그 램프를 켜지 않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램프가 있는데 왜 켜지 않느냐며 그 램프를 켰습니다. 그 청년은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냐며 화를 내고 다시 램프를 껐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지지 않고 다시 램프를 켰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마침내 화가 난 청년은 램프를 밖으로 내던져 깨 버렸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집으로 돌아가 새 램프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돌아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 우연찮게 그 청년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같은 빈민굴에 살고 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려주는 수녀에게 데레사 수녀를 보면 이렇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생활 속에 불타고 있다고 (Your light is still burning in my life)” 

이렇게 내 안에 있는 부끄러움, 그것을 밝히 보고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나는 변하게 됩니다. 먼저 내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즉시 그것은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나의 차가운 외면이 그것을 계속 얼어붙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엔 드라큘라가 있습니다. 자신의 실체를 절대 보여주기를 원치 않는 자아가 바로 혐오스럽고 나를 물어 자신의 제물로 만들어버리는 드라큘라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큘라는 빛을 보면 바로 타버리고 맙니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고해성사를 볼 때가 내 안의 드라큘라를 인정하는 가장 큰 순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들보를 인정하고 제거합시다. 빛으로 내 자신을 비추어보아야만 내 안의 혐오스런 자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모습과 대면할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자아는 빛에 의해 조금씩 재가 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전삼용(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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