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4.15)
페이지 정보
김종진 작성일14-04-15 09:37 조회1,077회 댓글0건본문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자) 성주간 화요일]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주간 화요일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 13,21ㄴ-33.36-38
배신을 하지 말 것이며 당하지도 않아야
사회복지에 전념하는 신부들과 공무원들이 소통을 위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해야 하지만 혜택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감당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공감하였습니다. 하기 싫다고 팽개칠 수 없는 일,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남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지녔던 첫 마음을 새롭게 일깨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신은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등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하게 되며 차라리 몰랐던 사람만도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잘 안다는 것이 오히려 별것도 아닌 것에 서운함을 갖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떤이는 말합니다. 내가 너를 믿은 것이 잘못이지....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의 품을 보고 폭, 깊이, 넓이를 더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첫 마음을 일깨우며 배신을 하지도 말 것이며 배신을 당하지도 않아야 하겠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마음을 알고 내내 번민하셨습니다. 속을 다 아시고 그것을 품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안에서 침묵으로 철저히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유다를 내치지 않으셨고 죽기까지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스승을 배반하였고 그 자책 때문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실 누구나 유다처럼 약한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릅니다. 베드로나 바오로는 주님을 등졌던 사람이지만 회개하여 주님의 도구로 항구 하게 살았습니다. 한때 주님을 배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주님의 자비를 믿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다의 자살은 ‘주님의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는 진리를 믿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나 상황에서도 주님의 자비 안에 굳건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 안에 우리는 최고의 존재입니다. 죄와 허물을 안고 있음에도.
사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은 나를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혹 앞에서 나를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나의 한계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혹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시험입니다. 하느님 편에서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커다란 공로가 될 것이고, 사탄의 편에 서서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파멸의 길, 죽음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거늘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유혹을 견뎌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항상 사탄의 말만 있는 것도 그렇다고 늘 하느님의 말씀만 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끊임없는 선택의 길에 서게 됩니다. 단호하게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혹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나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하느님 앞에서의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보다는 자비를 갈망하는 오늘을 축복해 주시길 빕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용기를 청합니다.
신앙을 버릴 것을 회유하는 가운데 김 유리에따 성녀는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을 고발하면 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실 것이요, 책을 갖다 바치면 태워 버리실 것이니 나는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
[(자) 성주간 화요일]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주간 화요일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 13,21ㄴ-33.36-38
배신을 하지 말 것이며 당하지도 않아야
사회복지에 전념하는 신부들과 공무원들이 소통을 위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해야 하지만 혜택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감당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공감하였습니다. 하기 싫다고 팽개칠 수 없는 일,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남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지녔던 첫 마음을 새롭게 일깨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신은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등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하게 되며 차라리 몰랐던 사람만도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잘 안다는 것이 오히려 별것도 아닌 것에 서운함을 갖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떤이는 말합니다. 내가 너를 믿은 것이 잘못이지....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의 품을 보고 폭, 깊이, 넓이를 더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첫 마음을 일깨우며 배신을 하지도 말 것이며 배신을 당하지도 않아야 하겠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마음을 알고 내내 번민하셨습니다. 속을 다 아시고 그것을 품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안에서 침묵으로 철저히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유다를 내치지 않으셨고 죽기까지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스승을 배반하였고 그 자책 때문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실 누구나 유다처럼 약한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릅니다. 베드로나 바오로는 주님을 등졌던 사람이지만 회개하여 주님의 도구로 항구 하게 살았습니다. 한때 주님을 배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주님의 자비를 믿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다의 자살은 ‘주님의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는 진리를 믿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나 상황에서도 주님의 자비 안에 굳건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 안에 우리는 최고의 존재입니다. 죄와 허물을 안고 있음에도.
사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은 나를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혹 앞에서 나를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나의 한계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혹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시험입니다. 하느님 편에서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커다란 공로가 될 것이고, 사탄의 편에 서서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파멸의 길, 죽음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거늘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유혹을 견뎌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항상 사탄의 말만 있는 것도 그렇다고 늘 하느님의 말씀만 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끊임없는 선택의 길에 서게 됩니다. 단호하게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혹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나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하느님 앞에서의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보다는 자비를 갈망하는 오늘을 축복해 주시길 빕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용기를 청합니다.
신앙을 버릴 것을 회유하는 가운데 김 유리에따 성녀는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을 고발하면 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실 것이요, 책을 갖다 바치면 태워 버리실 것이니 나는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