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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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작성일14-04-03 09:44 조회1,072회 댓글0건본문
2014년 4월 3일 목요일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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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해 사순 제4주간 목요일
<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복음: 요한 5,31-47
< 세상을 역행하는 삶 >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쫓기듯 시작에 다녀왔을 때, 집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어휴... 세... 상에.”
“엄마 맘마... 빠빠빠바.....”
놀라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장바구니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뻔한 일. 나는 눈치 없이 장부구니 앞으로 달려드는 둘째 아이를 잡고 다짜고짜 엉덩이를 때려 줬습니다.
“금방 청소 했는데 고새 이게 뭐야... 응?”
“으 앙!”
아이는 기겁을 하고 울었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나는 때리던 손을 멈췄습니다. 사실 아이한테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본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발육이 늦었습니다. 아이큐 80이 될까 말까... 게다가 언어장애까지.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아이입니다!
천지분간 못하고 뒤뚱대는 아이를 큰 딸은 그래도, 제 딴에는 언니라고 참 열심히도 챙깁니다. 밖에만 나갔다 하면 짓궂은 남자애들한테 놀림을 당하기 일쑨데도 동생을 부끄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날도 엄마한테 야단맞은 동생을 달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한바탕 격투를 벌였다는 큰 딸. 그 애가 저녁 무렵 멸치를 다듬는데 저도 거들겠다고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몸통은 버려두고 머리만 그릇에 소중히 담는 것이었습니다.
“정은아, 멸치는 몸통이 필요한 거지, 머리는 버리는 거야.”
그 말에 아이가 대꾸했습니다.
“치... 나도 알아.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멸치는 머리에 DHA가 들어 있어서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 이거 해은이 줄 거야.”
많이 먹고 동생 머리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며 모은 멸치머리.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아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천방지축 늦되는 동생이 큰애의 가슴에도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1, 머리가 좋아지는 약]
정은이는 멸치 머리만 한데 모읍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 안에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정은이는 해은이의 언니이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은이가 하는 일이 정은이가 해은이의 언니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증언한다.”
얼마 전 한 개신교 신자분과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시대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으셨던 것이고 하실 수만 있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믿고 있으셨습니다. 가끔은 천주교 다니시는 분들에게서도 이런 생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죽으실 운명이었고, 평생 그것을 알고 사셨습니다. 물론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 시므온이 성모님께 예언한 대로입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며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셔야 하는 것까지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수난을 당하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야 한다는 내용을 모세와 예언서를 통틀어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운명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제 뜻대로 마시고”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당신의 뜻을 끊임없이 포기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겐 따라야 하는 아버지가 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고통과 죽음을 원치 않지만, 예수님에게는 그것을 원하는 하느님이 계셨기에 그분의 ‘자발적인 죽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다 똑같습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죽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본성을 역행하고 있다면 그것을 원하는 어떤 분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누가 아무 이유 없이 수난과 죽음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태석 신부님이 수단 가장 가난한 곳에 가셔서 당신 생명을 소진한 이유도 바로 그 분의 아버지가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리 자캐오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자기 재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삶의 변화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삶이란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적인 삶과는 역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돈을 모으려고 하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불평할 때 우리는 감사할 것이며, 쉬고 싶을 때도 봉사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것은, 당신께서 아버지의 뜻으로 세상의 법을 거슬렀음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되지 않고 있다면 아직 우리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전삼용(요셉) 신부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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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해 사순 제4주간 목요일
<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복음: 요한 5,31-47
< 세상을 역행하는 삶 >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쫓기듯 시작에 다녀왔을 때, 집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어휴... 세... 상에.”
“엄마 맘마... 빠빠빠바.....”
놀라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장바구니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뻔한 일. 나는 눈치 없이 장부구니 앞으로 달려드는 둘째 아이를 잡고 다짜고짜 엉덩이를 때려 줬습니다.
“금방 청소 했는데 고새 이게 뭐야... 응?”
“으 앙!”
아이는 기겁을 하고 울었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나는 때리던 손을 멈췄습니다. 사실 아이한테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본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발육이 늦었습니다. 아이큐 80이 될까 말까... 게다가 언어장애까지.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아이입니다!
천지분간 못하고 뒤뚱대는 아이를 큰 딸은 그래도, 제 딴에는 언니라고 참 열심히도 챙깁니다. 밖에만 나갔다 하면 짓궂은 남자애들한테 놀림을 당하기 일쑨데도 동생을 부끄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날도 엄마한테 야단맞은 동생을 달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한바탕 격투를 벌였다는 큰 딸. 그 애가 저녁 무렵 멸치를 다듬는데 저도 거들겠다고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몸통은 버려두고 머리만 그릇에 소중히 담는 것이었습니다.
“정은아, 멸치는 몸통이 필요한 거지, 머리는 버리는 거야.”
그 말에 아이가 대꾸했습니다.
“치... 나도 알아.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멸치는 머리에 DHA가 들어 있어서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 이거 해은이 줄 거야.”
많이 먹고 동생 머리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며 모은 멸치머리.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아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천방지축 늦되는 동생이 큰애의 가슴에도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1, 머리가 좋아지는 약]
정은이는 멸치 머리만 한데 모읍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 안에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정은이는 해은이의 언니이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은이가 하는 일이 정은이가 해은이의 언니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증언한다.”
얼마 전 한 개신교 신자분과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시대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으셨던 것이고 하실 수만 있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믿고 있으셨습니다. 가끔은 천주교 다니시는 분들에게서도 이런 생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죽으실 운명이었고, 평생 그것을 알고 사셨습니다. 물론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 시므온이 성모님께 예언한 대로입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며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셔야 하는 것까지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수난을 당하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야 한다는 내용을 모세와 예언서를 통틀어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운명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제 뜻대로 마시고”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당신의 뜻을 끊임없이 포기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겐 따라야 하는 아버지가 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고통과 죽음을 원치 않지만, 예수님에게는 그것을 원하는 하느님이 계셨기에 그분의 ‘자발적인 죽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다 똑같습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죽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본성을 역행하고 있다면 그것을 원하는 어떤 분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누가 아무 이유 없이 수난과 죽음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태석 신부님이 수단 가장 가난한 곳에 가셔서 당신 생명을 소진한 이유도 바로 그 분의 아버지가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리 자캐오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자기 재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삶의 변화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삶이란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적인 삶과는 역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돈을 모으려고 하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불평할 때 우리는 감사할 것이며, 쉬고 싶을 때도 봉사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것은, 당신께서 아버지의 뜻으로 세상의 법을 거슬렀음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되지 않고 있다면 아직 우리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전삼용(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