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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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작성일14-08-11 13:07 조회1,016회 댓글0건본문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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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 17,22-27
넉넉함으로 아량을 베풀어라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만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 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 성전세로 성전을 유지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랍비나 사제들은 납세의 의무로부터 면제 대상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그 가족인 제자들은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성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세금을 거부한다면 실정법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을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져 본질적인 일을 그르칠 수 없으니 안해도 되는 일을 몸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 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 같아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어 큰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하면. 성전유지를 위한 성전세와 같은 것이 오늘의 교무금이나 봉헌금입니다.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성전을 유지하고 사제의 생활을 보장하며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쓰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는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제때에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납세의 의무가 없었지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마련하신 것을 잠시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사랑합니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
[(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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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 17,22-27
넉넉함으로 아량을 베풀어라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만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 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 성전세로 성전을 유지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랍비나 사제들은 납세의 의무로부터 면제 대상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그 가족인 제자들은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성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세금을 거부한다면 실정법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을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져 본질적인 일을 그르칠 수 없으니 안해도 되는 일을 몸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 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 같아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어 큰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하면. 성전유지를 위한 성전세와 같은 것이 오늘의 교무금이나 봉헌금입니다.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성전을 유지하고 사제의 생활을 보장하며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쓰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는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제때에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납세의 의무가 없었지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마련하신 것을 잠시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사랑합니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