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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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작성일13-06-07 10:06 조회1,229회 댓글0건본문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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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해 연중 제9주간 수요일
<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복음: 마르코 12,18-27
< 사랑은 희망한다 >
미국 디트로이트에 가난하지만 매우 성실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낡은 창고에 틀어박혀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집 뒤뜰의 낡은 창고를 개조한 그의 작은 연구실에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과 기름 냄새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몇 번이나 그 창고를 헐어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곤 했고, 동네 사람들도 그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믿어 주는 단 한 사람,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예요. 난 믿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을 이룰 거예요.”
아내는 늦은 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석유램프로 불을 비춰 주었고, 추운 겨울밤에는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도 그의 일을 도우며 격려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해냈어. 여보, 우리가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낡은 창고에서 엔진 연구에 몰두하던 그 젊은 기사는 기쁨에 넘쳐 아내를 끌어안으며 소리쳤습니다.
그날 고요한 새벽, 거리에서 들리는 요란한 엔진소리에 잠이 깬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창밖을 내다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새벽 거리를 그 젊은 기사가 아내와 함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헨리 포드였습니다.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 준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던 그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어 보입니다. 가장 예뻐 보입니다. 락강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받는 남자는 그 기대에 상응하기 위해 슈퍼맨이 되고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기대하는 것도 사라집니다. 남자는 더 이상 고마운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위해 꾸미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다면 관심도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가장 완전해 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어찌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그 생명을 다시 줄 수 없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성경과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능력을 무시하고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산 이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당신을 따를 믿음이 없는 이들이 죽은 이들입니다. 죽은 이들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 살아계신 하느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대로 되어주십니다. 하느님이 자비롭다고 느끼면 자비를 얻고 하느님이 무자비하다고 믿으면 그런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분에 대한 우리 사랑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라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것까지도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그분에 대해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소망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1950년 겨울, 시카고의 어느 빌딩 옥상에서 빌 조운즈라는 사나이가 투신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한때는 그의 사업도 크게 번창했었지만, 너무나 급격히 사업을 확장하다가 부도수표를 남발한 탓으로 결국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근심걱정을 나누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내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도저히 수습해볼 도리가 없게 된 조운즈는 옥상 4총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맨 아래층의 창밖으로 튀어나온 차양을 뚫고 길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엄지손가락만 다쳤을 뿐, 상처 하나 입지 않았습니다. 빌 조운즈는 의식을 회복했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대단한 기적이 일어났으니 지금까지 겪은 고난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아내는 남편을 위로하며 앞으로 미래에 대해 신중이 상의했습니다. 그러자 빌 조운즈는 비로소 시야를 넓게 하고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빌 조운즈는 건실한 사업가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상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십시오. 혼자 앓고 혼자 해결하려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희망하고 기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은 사랑이 없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이 영원하지만 사랑이 있다면 희망도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 전삼용(요셉) 신부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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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해 연중 제9주간 수요일
<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복음: 마르코 12,18-27
< 사랑은 희망한다 >
미국 디트로이트에 가난하지만 매우 성실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낡은 창고에 틀어박혀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집 뒤뜰의 낡은 창고를 개조한 그의 작은 연구실에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과 기름 냄새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몇 번이나 그 창고를 헐어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곤 했고, 동네 사람들도 그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믿어 주는 단 한 사람,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예요. 난 믿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을 이룰 거예요.”
아내는 늦은 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석유램프로 불을 비춰 주었고, 추운 겨울밤에는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도 그의 일을 도우며 격려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해냈어. 여보, 우리가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낡은 창고에서 엔진 연구에 몰두하던 그 젊은 기사는 기쁨에 넘쳐 아내를 끌어안으며 소리쳤습니다.
그날 고요한 새벽, 거리에서 들리는 요란한 엔진소리에 잠이 깬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창밖을 내다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새벽 거리를 그 젊은 기사가 아내와 함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헨리 포드였습니다.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 준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던 그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어 보입니다. 가장 예뻐 보입니다. 락강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받는 남자는 그 기대에 상응하기 위해 슈퍼맨이 되고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기대하는 것도 사라집니다. 남자는 더 이상 고마운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위해 꾸미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다면 관심도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가장 완전해 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어찌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그 생명을 다시 줄 수 없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성경과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능력을 무시하고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산 이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당신을 따를 믿음이 없는 이들이 죽은 이들입니다. 죽은 이들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 살아계신 하느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대로 되어주십니다. 하느님이 자비롭다고 느끼면 자비를 얻고 하느님이 무자비하다고 믿으면 그런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분에 대한 우리 사랑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라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것까지도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그분에 대해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소망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1950년 겨울, 시카고의 어느 빌딩 옥상에서 빌 조운즈라는 사나이가 투신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한때는 그의 사업도 크게 번창했었지만, 너무나 급격히 사업을 확장하다가 부도수표를 남발한 탓으로 결국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근심걱정을 나누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내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도저히 수습해볼 도리가 없게 된 조운즈는 옥상 4총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맨 아래층의 창밖으로 튀어나온 차양을 뚫고 길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엄지손가락만 다쳤을 뿐, 상처 하나 입지 않았습니다. 빌 조운즈는 의식을 회복했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대단한 기적이 일어났으니 지금까지 겪은 고난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아내는 남편을 위로하며 앞으로 미래에 대해 신중이 상의했습니다. 그러자 빌 조운즈는 비로소 시야를 넓게 하고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빌 조운즈는 건실한 사업가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상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십시오. 혼자 앓고 혼자 해결하려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희망하고 기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은 사랑이 없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이 영원하지만 사랑이 있다면 희망도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 전삼용(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