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장선우감독 (장만철) '까페물고기' 발간-태어날뻔한 아이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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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무 작성일11-09-02 23:47 조회1,710회 댓글0건본문
한국영화의 전위, 영화감독 장선우가 제주에서 쓴 장편 소설
한 편의 영화마다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감독 장선우의 일기 같은 소설이다. 55일 동안,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고백 같은 이 소설은 어느 날 세상에 살기 위해 찾아온 여자 아이를 돌려보내며 겪는 마음의 격랑과 좌초를 마치 사띠(붓다의 수행, ‘알아차림’)하듯 써내려간다. 커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출가하겠노라고 자신의 미래를 속삭이던 여름이와 이별하고, 49제를 끝낸 후 ‘그리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죽음마저 깨닫는 삶과 인연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다.
저 : 장선우
1986년 MBC 드라마작가로 활동했고 MBC의 [베스트셀러극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86년 <서울예수>에서 99년 <거짓말>까지 영화감독으로서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선우는 먹고 살려고 영화를 택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며 항상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로 한국영화판을 들끓게 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이벤트 메이커다. 질문주고 논쟁을 유도하는 `열린 영화`를 지향하는 장선우는 그런 논쟁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논쟁속에서 사회의 포용력이 커지질 바란다고 말한다.
[필모그래피]
성공시대 (1988)(1988)|감독
우묵배미의 사랑(1990)|감독
경마장 가는 길(1991)|감독
화엄경(1993)|감독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감독
꽃잎(1996)|감독
나쁜 영화(1997)|감독
거짓말 (1999)(1999)|감독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감독
귀여워(2003)|장수로
가을날의 동화-귀여워(2004)|주연배우
한국영화 씻김/Cinema On the Road(BFI 기획, 세계영화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한국 편)|
장선우 변주곡/Jang Sun-woo Variation(감독, 토니 레인즈)|
10/04/28 수요일
10/04/29 목요일
10/04/30 금요일
10/05/02 일요일
10/05/04 화요일
10/05/03 월요일
10/05/04 화요일
10/05/05 수요일
10/05/06 목요일
10/05/07 금요일
10/05/11 화요일
10/05/28 금요일
10/05/29 토요일
10/06/15 화요일
10/06/21 하지
발문
후기
10/04/28 수요일
우박, 돌풍, 황사, 비, 120년 만에 같은 시기 최저 기온
하늘이 노랬다. 앞이 캄캄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그녀는 전날 약국에서 사온 임신 진단 시약 탓에 잠을 설친 모양이다. 새벽, 화장실에서 첫 오줌을 받아 테스트 한 뒤 이불 속에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임신이야.
-뭐? 너가 성모 마리아야? 왜 임신이야?
-다 원인이 있으니까 그렇지.
-무슨? 언제?
-7주 됐어.
-7주? 그런데도 몰랐단 말이야? ---p.7
-어린이, 너는 손님이다. 물고기 카페에 온 많은 손님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만 걸어 들어온 것도, 안겨서 들어오거나 업혀 들어온 것이 아니고 날라서 들어온, 뱃속으로 들어온 좀 어이없는 손님이다. 네가 떠날 때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는 할 것이다. 학교도 원한다면 보내주겠다. 하지만 나중에 떠날 때 손님답게 계산은 잘 하고 가라. 내가 먼저 가겠지만 그렇다면 엄마한테 계산 잘 해라. 돈으로 지불 못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할일을 다 마치고 생사를 벗어나라.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곳으로 너는 가라. ---p.44
‘부다 바’는 우리 집에 있는 이를테면 홈바이다. 이 집을 고칠 때 주방 쪽에 빠데(핸디코트)를 바르면서 바르던 헤라로 한쪽 벽에 ‘Buddha Bar-since 2005’라고 새겼었다. 땔감으로 가져다 준 나무들을 골라서 며칠 걸려 테이블을 짜고, 두꺼운 합판을 상판으로 깔고, 주방에 붙이다 남은 백색 타일을 그 위에 붙였다. 그럴 듯했다. 타일이어서 무엇을 흘려도 괜찮았다. 그 옆으로 선반도 하나 짜서 넣었다. 그리고 거기 앉아 밥도 먹고, 밤이 되면 술도 마셨다. 그녀는 내가 주문하는 대로 안주도 만들어주고 술도 주었다. 그녀는 주모였고, 언제나 그 바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p.46
몽골에서 추진하던 영화 「천개의 고원」이 좌절된 뒤였다. 나는 한때 훈(중국에서는 흉노)처럼 만리장성 넘어 오르도스 초원을 꿈꾸었고, 말달렸고, 고비사막을 헤매었고, 노마드(유목)를 노래했었다. 노마디즘을 사유한 질 들뢰즈의 책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초원의 악기, 마두금馬頭琴 몽골의 찰현악기. 길이 1m의 대에 두 개의 현이 있고, 위쪽에 말 모양을 조각해 이 이름이 붙었다.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스텝이 구성되고, 캐스팅도 끝냈다. 최적의 로케이션 촬영지도 정했고, 미술, 음악 모든 것이 준비되고 있었다. 말들도 훈련이 끝나가고 있었고, 활, 화살, 칼, 갑옷, 깃발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이 문제였다. 한무제漢武帝 역을 맡은 제작자는 만리장성을 둘러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만리장성을 넘어야 한다고 고집 부렸다. 우리는 끝내 만리장성은 넘을 수가 없었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면처럼……. ---p.49
서럽게 나를 원망하며 울고 울었다.
그때 나는 고비사막으로 들어가 실종을 꿈꾸었었다. 주인공 소리처럼…….
고비에서 실종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냥 걸어 나가면 된다. 어디에나 바람에 풍화된 짐승들의 하얀 뼈들이, 형해形骸가 널려 있었다.
그래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비 대신 제주를 택했고, 사막 대신 바다를 택했다. 빈집 하나 얻어 귀양살이하듯 이곳에 유폐되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빈집을 고치면서 나는 ‘서방정토로 돌아가다. 西歸’라고 썼던 것이다. ‘Buddha Bar’라고도 쓰고, ‘서귀선원西歸禪院’이라고 쓰고, ‘천장지구天長地久’라고도 썼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며, 나를 따라 내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낯선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어린이는 지금 이곳으로 애써 찾아 온 것이라고, 그의 새로운 생애를 위하여……. ---p.52
마지막 기회다. 비록 어린이가 마취제를 맞고, 진통제를 맞았다하더라도, 유산이 될지 몰라도 죽이지는 말아야한다고, 수술을 막아야한다고, 잡초처럼 뽑혀서는 안 된다고…….
그러다가 다시 보내야한다고, 시간을 끌수록 고통은 더 커질 뿐이라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너를 넘겨줄 수 없다고, 아니 어쩌면 뻔한 미래에 너를 던질 수 없다고, 너는 마당 가운데 크는 삼나무가 아니라고, 억새가 아니라고……, 우리는 너의 태어남이 결코 기쁘지 않다고, 너의 태어남을 기뻐하는 곳에 너는 가라고…….
ㅡ부처님, 괴로움은 어디서 옵니까? ---p.111
한국영화의 전위, 영화감독 장선우가 제주에서 쓴 장편 소설
한 편의 영화마다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감독 장선우의 일기 같은 소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후 충무로를 떠나 섬 제주에 살고 있는 장선우 감독이 영상이 아닌 소설이라는 장르로 풀어낸 처연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55일 동안,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고백 같은 이 소설은 어느 날 세상에 살기 위해 찾아온 여자 아이를 돌려보내며 겪는 마음의 격랑과 좌초를 마치 사띠(붓다의 수행, ‘알아차림’)하듯 써내려간다. 커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출가하겠노라고 자신의 미래를 속삭이던 여름이와 이별하고, 49제를 끝낸 후 ‘그리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죽음마저 깨닫는 삶과 인연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
■ 출판사 서평
제주 바닷가 마을의 작고 착한 cafe 물고기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꽃잎」 「나쁜영화」 「거짓말」 등 사회적 금기와 싸우고 새로운 실험에 도전했던 영화감독 장선우. 「성냥팔이…」의 흥행실패 이후 충무로를 떠났던 그가 제주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주에서 벌써 6년째, 낡은 돌집을 고쳐 작은 카페를 열고서 삶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한 모금의 깊은 휴식을 주고 있는 ‘cafe 물고기’가 점점 입소문을 타고 육지까지 전해진 까닭이다.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장선우 감독이 이곳에서 쓴 소설이다. 카페 물고기와 대평리 마을은 곧바로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마음씨 착한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작은 카페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한 축을 이룬다. 물론 그 이야기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 작은 마을 카페에서도 사람들 간의 부침이 있고, 각자의 욕망은 파도의 포말처럼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들끓는 욕망을 마치 작가 자신 그대로인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한 편의 우화 소설로도 읽힌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여자아이 자희慈喜
소설에는 이처럼 작가 자신과 동일시되는 주인공과,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함께 사는 그녀와의 사이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아이가 찾아온다. 임신. 작은 카페의 행복과 평화가 익숙해질 때쯤 찾아온 격랑 같은 일로 아이를 키워 자라게 할 것인지, 돌려보낼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뇌하며 좌초하게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절망과 좌절, 그리고 바닷가 마을 작은 카페에서 애써 찾은 평화와 행복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리는 쓰나미였다. 자희,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인 자비희사慈悲喜捨에서 따온 두 글자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뱃속의 아이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과 아이의 운명은 칼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자라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하여 출가하겠노라고 발버둥친다.
저 착하게 지낼 게요. 조용히 지낼게요. 커서 여배우가 될 게요. 그리고 출가도 할 게요. 아빠는 유명한 여배우가 출가하는 걸 보고 싶어 했잖아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가 출가해서 윤회를 벗어날 게요. 많은 이들에게 이득이 있게 할 게요. 아빠…….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와 깨달음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그런 고뇌 속에서도 아이에게 읽어주거나 대화하면서 설명해주는 붓다의 가르침들이다. 특히 엄격하게 붓다 시대의 언어인 빠알리어로 된 근본불교, 즉 붓다가 직접 설한 가르침만을 기초로 한 경전을 태교하듯 읽어주는 대목은 마치 죽음을 앞둔 이에게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어주는 것만큼 읽는 이를 비장하게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붓다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하나인 연기법에 관한 슬픈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제주의 검은 현무암으로 된 바닷가 갯바위에서 아빠와 아이의 건조한 대화들과 혹은 소설 전체에서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죽음’을 느꼈다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특히 소설 곳곳에 놓여있는 주해를 통해 빠알리어 원문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붓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 소설의 무게와 주제를 한층 깊게 한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여름에 관한 이야기
소설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4樂 28일의 일기에서 시작하여 6월 21일에 끝맺는다. 자희 혹은 여름이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돌려보낸 여름의 이야기이다. 한편 소설 속의 계절은 여름이 오면서 끝맺는다. 제목 ‘여름 이야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여자 아이 ‘여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계절 ‘여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여름’은 채 꽃피우지 못한 생명에 관한,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세상의 근원적 진실에 대한 압도적인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절망은 죽음 같아서,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희망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주어진 대로 읽을 것이다. 이미 첫머리에 충분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일기체로 쓰이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소설입니다. 그 누구도 이것으로 인해 피해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장선우 감독의 근황에 대한 기록으로도 읽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난 어린이(장선우 감독은 그렇게 불렀다) ‘자희慈悲喜捨’를 미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중단된 영화로 읽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삶의 이야기. 결국 중단된 이야기. 2010년 그해 55일 간의 일기. 이상한 일기. 나는 중얼거린다. 아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일기에 관한 독후감을 쓰다니.
- 정성일(영화 평론가)
한 편의 영화마다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감독 장선우의 일기 같은 소설이다. 55일 동안,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고백 같은 이 소설은 어느 날 세상에 살기 위해 찾아온 여자 아이를 돌려보내며 겪는 마음의 격랑과 좌초를 마치 사띠(붓다의 수행, ‘알아차림’)하듯 써내려간다. 커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출가하겠노라고 자신의 미래를 속삭이던 여름이와 이별하고, 49제를 끝낸 후 ‘그리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죽음마저 깨닫는 삶과 인연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다.
저 : 장선우
1986년 MBC 드라마작가로 활동했고 MBC의 [베스트셀러극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86년 <서울예수>에서 99년 <거짓말>까지 영화감독으로서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선우는 먹고 살려고 영화를 택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며 항상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로 한국영화판을 들끓게 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이벤트 메이커다. 질문주고 논쟁을 유도하는 `열린 영화`를 지향하는 장선우는 그런 논쟁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논쟁속에서 사회의 포용력이 커지질 바란다고 말한다.
[필모그래피]
성공시대 (1988)(1988)|감독
우묵배미의 사랑(1990)|감독
경마장 가는 길(1991)|감독
화엄경(1993)|감독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감독
꽃잎(1996)|감독
나쁜 영화(1997)|감독
거짓말 (1999)(1999)|감독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감독
귀여워(2003)|장수로
가을날의 동화-귀여워(2004)|주연배우
한국영화 씻김/Cinema On the Road(BFI 기획, 세계영화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한국 편)|
장선우 변주곡/Jang Sun-woo Variation(감독, 토니 레인즈)|
10/04/28 수요일
10/04/29 목요일
10/04/30 금요일
10/05/02 일요일
10/05/04 화요일
10/05/03 월요일
10/05/04 화요일
10/05/05 수요일
10/05/06 목요일
10/05/07 금요일
10/05/11 화요일
10/05/28 금요일
10/05/29 토요일
10/06/15 화요일
10/06/21 하지
발문
후기
10/04/28 수요일
우박, 돌풍, 황사, 비, 120년 만에 같은 시기 최저 기온
하늘이 노랬다. 앞이 캄캄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그녀는 전날 약국에서 사온 임신 진단 시약 탓에 잠을 설친 모양이다. 새벽, 화장실에서 첫 오줌을 받아 테스트 한 뒤 이불 속에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임신이야.
-뭐? 너가 성모 마리아야? 왜 임신이야?
-다 원인이 있으니까 그렇지.
-무슨? 언제?
-7주 됐어.
-7주? 그런데도 몰랐단 말이야? ---p.7
-어린이, 너는 손님이다. 물고기 카페에 온 많은 손님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만 걸어 들어온 것도, 안겨서 들어오거나 업혀 들어온 것이 아니고 날라서 들어온, 뱃속으로 들어온 좀 어이없는 손님이다. 네가 떠날 때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는 할 것이다. 학교도 원한다면 보내주겠다. 하지만 나중에 떠날 때 손님답게 계산은 잘 하고 가라. 내가 먼저 가겠지만 그렇다면 엄마한테 계산 잘 해라. 돈으로 지불 못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할일을 다 마치고 생사를 벗어나라.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곳으로 너는 가라. ---p.44
‘부다 바’는 우리 집에 있는 이를테면 홈바이다. 이 집을 고칠 때 주방 쪽에 빠데(핸디코트)를 바르면서 바르던 헤라로 한쪽 벽에 ‘Buddha Bar-since 2005’라고 새겼었다. 땔감으로 가져다 준 나무들을 골라서 며칠 걸려 테이블을 짜고, 두꺼운 합판을 상판으로 깔고, 주방에 붙이다 남은 백색 타일을 그 위에 붙였다. 그럴 듯했다. 타일이어서 무엇을 흘려도 괜찮았다. 그 옆으로 선반도 하나 짜서 넣었다. 그리고 거기 앉아 밥도 먹고, 밤이 되면 술도 마셨다. 그녀는 내가 주문하는 대로 안주도 만들어주고 술도 주었다. 그녀는 주모였고, 언제나 그 바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p.46
몽골에서 추진하던 영화 「천개의 고원」이 좌절된 뒤였다. 나는 한때 훈(중국에서는 흉노)처럼 만리장성 넘어 오르도스 초원을 꿈꾸었고, 말달렸고, 고비사막을 헤매었고, 노마드(유목)를 노래했었다. 노마디즘을 사유한 질 들뢰즈의 책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초원의 악기, 마두금馬頭琴 몽골의 찰현악기. 길이 1m의 대에 두 개의 현이 있고, 위쪽에 말 모양을 조각해 이 이름이 붙었다.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스텝이 구성되고, 캐스팅도 끝냈다. 최적의 로케이션 촬영지도 정했고, 미술, 음악 모든 것이 준비되고 있었다. 말들도 훈련이 끝나가고 있었고, 활, 화살, 칼, 갑옷, 깃발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이 문제였다. 한무제漢武帝 역을 맡은 제작자는 만리장성을 둘러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만리장성을 넘어야 한다고 고집 부렸다. 우리는 끝내 만리장성은 넘을 수가 없었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면처럼……. ---p.49
서럽게 나를 원망하며 울고 울었다.
그때 나는 고비사막으로 들어가 실종을 꿈꾸었었다. 주인공 소리처럼…….
고비에서 실종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냥 걸어 나가면 된다. 어디에나 바람에 풍화된 짐승들의 하얀 뼈들이, 형해形骸가 널려 있었다.
그래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비 대신 제주를 택했고, 사막 대신 바다를 택했다. 빈집 하나 얻어 귀양살이하듯 이곳에 유폐되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빈집을 고치면서 나는 ‘서방정토로 돌아가다. 西歸’라고 썼던 것이다. ‘Buddha Bar’라고도 쓰고, ‘서귀선원西歸禪院’이라고 쓰고, ‘천장지구天長地久’라고도 썼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며, 나를 따라 내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낯선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어린이는 지금 이곳으로 애써 찾아 온 것이라고, 그의 새로운 생애를 위하여……. ---p.52
마지막 기회다. 비록 어린이가 마취제를 맞고, 진통제를 맞았다하더라도, 유산이 될지 몰라도 죽이지는 말아야한다고, 수술을 막아야한다고, 잡초처럼 뽑혀서는 안 된다고…….
그러다가 다시 보내야한다고, 시간을 끌수록 고통은 더 커질 뿐이라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너를 넘겨줄 수 없다고, 아니 어쩌면 뻔한 미래에 너를 던질 수 없다고, 너는 마당 가운데 크는 삼나무가 아니라고, 억새가 아니라고……, 우리는 너의 태어남이 결코 기쁘지 않다고, 너의 태어남을 기뻐하는 곳에 너는 가라고…….
ㅡ부처님, 괴로움은 어디서 옵니까? ---p.111
한국영화의 전위, 영화감독 장선우가 제주에서 쓴 장편 소설
한 편의 영화마다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감독 장선우의 일기 같은 소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후 충무로를 떠나 섬 제주에 살고 있는 장선우 감독이 영상이 아닌 소설이라는 장르로 풀어낸 처연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55일 동안,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고백 같은 이 소설은 어느 날 세상에 살기 위해 찾아온 여자 아이를 돌려보내며 겪는 마음의 격랑과 좌초를 마치 사띠(붓다의 수행, ‘알아차림’)하듯 써내려간다. 커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출가하겠노라고 자신의 미래를 속삭이던 여름이와 이별하고, 49제를 끝낸 후 ‘그리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죽음마저 깨닫는 삶과 인연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
■ 출판사 서평
제주 바닷가 마을의 작고 착한 cafe 물고기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꽃잎」 「나쁜영화」 「거짓말」 등 사회적 금기와 싸우고 새로운 실험에 도전했던 영화감독 장선우. 「성냥팔이…」의 흥행실패 이후 충무로를 떠났던 그가 제주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주에서 벌써 6년째, 낡은 돌집을 고쳐 작은 카페를 열고서 삶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한 모금의 깊은 휴식을 주고 있는 ‘cafe 물고기’가 점점 입소문을 타고 육지까지 전해진 까닭이다.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장선우 감독이 이곳에서 쓴 소설이다. 카페 물고기와 대평리 마을은 곧바로 15편의 일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마음씨 착한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작은 카페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한 축을 이룬다. 물론 그 이야기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 작은 마을 카페에서도 사람들 간의 부침이 있고, 각자의 욕망은 파도의 포말처럼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들끓는 욕망을 마치 작가 자신 그대로인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한 편의 우화 소설로도 읽힌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여자아이 자희慈喜
소설에는 이처럼 작가 자신과 동일시되는 주인공과,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함께 사는 그녀와의 사이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아이가 찾아온다. 임신. 작은 카페의 행복과 평화가 익숙해질 때쯤 찾아온 격랑 같은 일로 아이를 키워 자라게 할 것인지, 돌려보낼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뇌하며 좌초하게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절망과 좌절, 그리고 바닷가 마을 작은 카페에서 애써 찾은 평화와 행복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리는 쓰나미였다. 자희,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인 자비희사慈悲喜捨에서 따온 두 글자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뱃속의 아이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과 아이의 운명은 칼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자라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노라고, 그리하여 출가하겠노라고 발버둥친다.
저 착하게 지낼 게요. 조용히 지낼게요. 커서 여배우가 될 게요. 그리고 출가도 할 게요. 아빠는 유명한 여배우가 출가하는 걸 보고 싶어 했잖아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가 출가해서 윤회를 벗어날 게요. 많은 이들에게 이득이 있게 할 게요. 아빠…….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와 깨달음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그런 고뇌 속에서도 아이에게 읽어주거나 대화하면서 설명해주는 붓다의 가르침들이다. 특히 엄격하게 붓다 시대의 언어인 빠알리어로 된 근본불교, 즉 붓다가 직접 설한 가르침만을 기초로 한 경전을 태교하듯 읽어주는 대목은 마치 죽음을 앞둔 이에게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어주는 것만큼 읽는 이를 비장하게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붓다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하나인 연기법에 관한 슬픈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제주의 검은 현무암으로 된 바닷가 갯바위에서 아빠와 아이의 건조한 대화들과 혹은 소설 전체에서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죽음’을 느꼈다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특히 소설 곳곳에 놓여있는 주해를 통해 빠알리어 원문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붓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 소설의 무게와 주제를 한층 깊게 한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여름에 관한 이야기
소설 「cafe 물고기_여름 이야기」는 4樂 28일의 일기에서 시작하여 6월 21일에 끝맺는다. 자희 혹은 여름이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돌려보낸 여름의 이야기이다. 한편 소설 속의 계절은 여름이 오면서 끝맺는다. 제목 ‘여름 이야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여자 아이 ‘여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계절 ‘여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여름’은 채 꽃피우지 못한 생명에 관한,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세상의 근원적 진실에 대한 압도적인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절망은 죽음 같아서,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희망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주어진 대로 읽을 것이다. 이미 첫머리에 충분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일기체로 쓰이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소설입니다. 그 누구도 이것으로 인해 피해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장선우 감독의 근황에 대한 기록으로도 읽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난 어린이(장선우 감독은 그렇게 불렀다) ‘자희慈悲喜捨’를 미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중단된 영화로 읽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삶의 이야기. 결국 중단된 이야기. 2010년 그해 55일 간의 일기. 이상한 일기. 나는 중얼거린다. 아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일기에 관한 독후감을 쓰다니.
- 정성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