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두 산 서 북 능 선 종 주 기 ◇
□ 설레임으로 출발 □
* 중국인에게는 白頭山(그들은 長白山이라 부른다)은 천하 제일의 名山도 아니요, 절경도 아닌 듯하다. 그들은 산은 황산을 꼽고, 절경은 鷄林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가 둘러 본 백두산은 생각보다 훨씬 개발이 덜 되어 있었고, 자연 그대로 놓아 두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민족(韓民族)에게는 백두산은 靈山이요 聖山이며, 天池는 신비함이요 민족의 상징처럼 여겨 왔지 않았던가?
* 서울고 동창 산우회와 함께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종주하고 있는 나의 목적지도 궁극적으로 智異山 천왕봉에서 백두산 장군봉까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년 9월에 끝나는 백두대간 종주는 현재의 남북 여건상 진부령까지만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함에 서울고 동창 산우회 주관 백두산 원정 산행 공고가 나온 금년초부터 나는 유혹과 갈등을 오고 갔다. 비록 중국령 서북능선 종주이지만 나에겐 강한 유혹의 여지가 충분했다.
우리 동기 중 7명이(한명은 아들 동반)이 가기로 확정하였으니, 동기회 총무이고하니 왠만하면 같이 갈 것을 종용하니, 경비와 시간 등 여건이 만만찮은데도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생각되어 만사를 제쳐 두고 결행하기로 하였다.
서울고 동문 가족등 97명이 참가한 이번 산행과 여행은 해외 산행 전문 가이드 업체 ‘알 펜 투어’에서 기획과 집행을 맡았고, 우리 동기(22회)는 김진호와 아들 영락(중2)군, 고승국, 서병일, 오성학, 이상한, 이종현, 이철화 그리고 필자 모두 9명이 참가하였다. 6월말과 7월초 일요일마다 팀웍 산행도 연습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도 하였다.
백두산 서북능선 종주를 한 바 있는 어느 산악인은 통일이 될 때까지 북한땅 서남동 종주를 빼고는 더 이상 백두산의 아름다움과 절경을 더 볼 수가 없으니 궂이 더 가 볼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 이글의 끝에 이에 대해 몇자 언급하고져 한다.
* 7월 11일(일), 13시 30분 CA124편은 김포공항을 이륙하였다. 96년 여름 아내와 함께 미국 동부에 간 이후로 해외는 처음이었다. 14시 40분(이하 현지시각; 한국시간보다 1시간 빠름)에 북경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공항은 혼잡스러웠고 덜 체계적인 공항 관리(짐 찾아 다시 개개인이 연길행 항공편에 부치고, 단체 비자라 입국 수속도 까다롭고, 연길행 비행기는 이륙이 지연되는데 안내 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고 찜통 같은 대합실에서 마냥 기다리게 했다.)등등으로 짜증도 나고 출발할 때의 설레임도 반감된 상태로 밤8시에야 연길에 겨우 도착하였다.
연길에 도착하자 마자 현지 가이드들은 북한 당국이 운영하고 있는 류경호텔로 직행하여, 풍성한 음식을 내민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연길로 오는 기내에서 기내식을 조금 먹던지, 아예 손을 대지 말 것을 ... 사전 정보 교환이 없었던지 처음부터 손발이 맞지 않은 듯 하였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반 이상 남기고, 그나마 북한 아가씨(복무원 동무라던가?)의 생각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서비스에 한결 기분이 누그러 졌다. 1층에서 우리들을 위해 노래도 불러 주고 ‘아침이슬’을 부를 땐 모두가 합창을 하였다. 아쉬운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대우가 투자한 연길 최고급 호텔인 대우호텔에 밤 9시 반경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내일부터 산행 및 여행에 대비하였다. 서울고 동문 가족 97명, 알 펜 투어 임직원 4명, 현지 조선족 가이드 8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일행은 4개조로 편성하여, 2.3조와 1.4조는 각각 교차로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로 하였다.(백운봉 산장의 수용 인원은 70여명이고, 우리는 4조에 끼어 7월 14일에 서북능선을 타기로 되었다.) 짐 꾸리고 샤워를 마친 우리는 중국에서 첫밤을 가볍게 술잔 나누면서 얘기하다 자정께 취침에 들어갔다.
□ 天池에 얼굴을 묻고 □
* 7월 12일(월) 04시 30분 대우호텔을 출발하여, 龍井~三道를 거쳐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 이동하였다. 이도백하의 고려식당(60년말~70년초 우리네 시골식당을 연상시킴)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각자 도시락(한국에서 밑반찬을 준비하여 가는 것이 좋다는 이유를 비로소 깨닫다)을 지참하고, 2.3조는 서부지역 백운봉 산장으로 떠났고, 우리 1.4조는 백두산 온천구로 다시 이동하여 10시가 넘어서야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였다. 오는 도중 끝없이 이어진 삼림지대를 부러운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비포장의 덜컹거림도 느낄 수가 없었다.
* 10시 30분부터 천문봉을 향해 본격 산행을 시작하였다(나이 많은 선배와 부인들은 대부분 지프를 타고 기상대까지 갔는데, 우리 일행중 오성학이 타고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불로봉에 이르니 삼림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초원지대이다. 간간히 기상대로 나 있는 콘크리트 길을 가로 질렀다 만났다 반복한다. 흑풍구를 지나 고래등에 올라서니 시야가 확 트인 초원과 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서쪽 아래로 아스러한 삼림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하늘은 구름 몇조각만 둥실 아주 맑고, 바람은 살랑이는데 햇살은 따갑다. 해발 2000m를 넘어 섰다고 가이드가 귀뜸해 준다. 고래등 남서쪽으로 장백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 절벽위 초원지대의 움푹 파인 곳에는 잔설이 아직도 남아 있고, 조그만 언덕을 또 오르니 달문 사이로 천지가 다소곳이 살짝 모습을 들이 내민다. 꽃들의 수수함과 푸른 초원과 더불어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어제의 짜증과 피곤함도 말끔이 가신다.
* 왼쪽으로 기상대를 바라보면서 가파른 경사도를 올라 드디어 천문봉(天文峰:2670m)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이고,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들과 천지의 시퍼런 물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만한 날씨 보기가 쉽지 않다고 가이드는 몇번이나 말하며, 5가지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나 보이는 백두산과 천지의 모습이란다. 기념 촬영을 하고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나 마냥 지체할 수 없어 발걸음을 철벽봉으로 옮겼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천문봉에서 천지를 보고 가고, 그것도 기상대까지 지프로 와서 20분가량 올라와 천문봉에 닿는다고 하며, 일부는 소천지~장백폭포 옆길~달문~천지 코스를 보고 백두산을 다녀 왔다고 한단다.
* 철벽봉(2550m)~화구벽까진 경사가 심하고 오른쪽은 초원으로 완만하나, 왼쪽은 70도가 넘는 급경사이고 부석돌들이라 낙석의 위험이 대단히 높은 곳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우랑도(牛郞渡:견우.직녀의 전설이 얽혀 있음)까지 내려와서, 우랑도를 건널 때엔 발목이 시리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차가움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하여 순간 더위는 잊어 버렸다(수온이 5℃ 안팎임). 먼저 와 있던 오성학이 능글맞게 웃으며, 자기는 기다리다 지루해 우랑도를 열번이나 왔다 갔다 했단다. 의리없는 자식, 피서 한번 끝내 주었군!
늦은 점심 도시락으로 말끔히 비우고, 천지 물가에 다가 갔다. 북한쪽의 봉우리들이 왼편으로 쌍무지개봉(2626m), 망천우봉(2712m), 비류봉(2580m), 장군봉(2749m:백두산 최고봉), 해발봉(2719m), 제비봉(2549m) 등이 보이고, 오른쪽 멀리 중국령 청석봉(2662m), 백운봉(2690m), 차일봉(2596m)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오후 햇살에 그 웅좌와 자태들을 시퍼런 천지 위로 내밀며 뽑내고 있다. 2000m 넘는 거봉을 17개나 거느리고 있는 천지는 왕관처럼 도도하고 위엄있어 보였다. 그리고 신비스러웠다.
*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돌고 돌아 왔던가? 그 비싼 돈을 들이고 한 순간의 천지 차가운 물에 얼굴을 묻기 위해 얼마나 가슴 설레며 땀을 흘리고 무수한 산행를 해 왔던가?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놈의 얼어 죽을 이념들이 무엇이기에, 자연의 위대함을 이렇게 차단할 수 있었던가? 얼마를 머물렀는지 모른다. 한동안 그냥 멍하니 장군봉 쪽을 쳐다만 보았다. 점점 서늘함을 느낀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되돌려 달문을 거쳐 승사하를 따라 장백폭포를 우측에 두고, 왼편의 까까지른 절벽으로 난 단애의 길로 내려섰다. 이미 낙석으로 길이 패쇄되었는데, 다시 돌아가 화구벽~철벽봉~천문봉으로 되돌아 가기엔 시간도 늦었고, 오르막 길 낙석의 위험과 일부에게는 무리라는 판단으로 이미 작살이 난 잔도와 엉망이 된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중국공안당국에게 벌금(?)을 물고 간신히 무마되었지만, 소리라도 한번 지르면 곧장 돌들이 떨어질 것 같기에 모두들 숨소리 내지 않고 조심조심 하산하여 무사하길 다행이었지 내려와 올려다 보니 아찔한 길이었다(우리와 정반대의 일정으로 움직였던 2.3조는 이 코스를 택하지 못했다. 중국공안당국이 두번 봐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천문봉에서 천지를 내려만 보고, 우랑도를 거쳐 천지에 손을 담구는 것을 포기하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7월 15일 두만강. 삽합 가는 대신, 기어이 천지까지 내려 갔다가 철벽봉을 거진 다 올라 올 무렵, 소나기와 천둥 번개를 만나 혼쭐들이 났다고 한다.).
* 두견산장(장백폭포 가는 도로가에 위치)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산장의 저녁은 소소했다. 내일은 산행이 없기에 우리 일행(영락군은 일찍자고...)은 나이트클럽에 갔다. 말이 나이트클럽이지 조그만 단란주점 수준이었다. 시중드는 조선족 2명, 한족 1명의 아가씨들은 우리를 보고 영어도 하고, 유머 감각도 있고, 대단히 점잖고 재미있어 모처럼 편안한 손님들 모셨다고 오히려 자기들이 더 좋아한다. 특히, 철화의 마이클 잭슨 흉내는 모두 배꼽을 잡고 뒹굴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왔던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했길래 이러는가 싶어 쓴 웃음도 지어본다. 노래방 기기도 한글로 나오고, 왠만한 한국에서의 곡명은 다 있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끝내 주니까, 상술 좋은 중국이 지나칠 리가 있겠는가? (며칠 후 갔던 이도백하의 술집도 대동소이 했다.) 맥주로 긴장을 풀고, 노래로 피로를 날려 보내면서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자연원시림과 고산화원지대 : 백두산 서부지대를 가다 □
* 7월13일(화),아침식사 후(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왕사발면으로 때웠다), 오전 7시 30분에 두견산장을 출발하였다. 이도백하를 경유하여 노수하, 췌양을 지나 송강하까지 끝없이 달려 백운봉 산장으로 향했다. 전부 비포장이었다. 때로는 흙먼지 자욱히 일으키며, 간혹 우리네 시골 비포장과 흡사한 길로, 때로는 화산석으로 다져진 아스팔트 못지 않은 딱딱한길로 달렸다. 쭉쭉 뻗은 길 좌우로 펼쳐진 삼림은 정말 부러웠다.
백운봉 산장 입구와 산문이 교차한 지점에 유일하게 매점이 있다. 그 입구에서 버스로 1시간 반가량 들어서니 세갈래 길...우측이 금강대협곡, 좌측이 금강폭포로 가는 길인데, 기사가 앞차를 놓쳐 30분 가량 원시림 지대에서 헤매었다. 덕택에 자연원시림의 경치를 좋게 볼 수가 있었다. 날 짐승들이 마음껏 뛰놀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간혹 거목들이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는 것은 이 일대에서 종종 생기는 회오리성 돌풍 때문이라고 한다. 가까스로 길을 찾아 금강대협곡 입구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 30분 가량 우림 사이로 가니, 1백만년 전 화산 폭발로 평탄면이 이루어진 뒤, 오랜 세월 하천 침식에 의해 생긴 기암지대인 금강대협곡이 나타났다. 깊이 80~200m 회색절벽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는 무수한 기암들이 서 있다. 그 길이는 약6㎞이며, 이 하천은 북금강으로 송화강 상류부이다. 이 협곡의 남쪽 남금강에는 또한 금강폭포가 있다. 오던 길을 되돌아 버스로 이동하여, 제자하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동쪽으로 멀리 백운봉이 보이고, 협곡 사이의 물은 차겁고 세차다. 고산목과 초원이 어우러진 곳엔 들꽃들이 오후 햇살에 화사하다. 때마침 구보 훈련중이던 중국국경수비대 군인들이 땀에 범벅이 되어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눈길을 우리 일행에서 쉽사리 돌리지 못하며 지나간다.
* 금강대협곡 입구에서 4호차의 타이어 수리 때문에, 우리는 1호차를 대신 타고 왔는데, 삼갈래 길에서 기다리기로 한 1조들이 4호차를 타고 먼저 가 버린 바람에(나중에야 알았음) 쓸데없이 40분 가량 시간을 허비하였다. 그 덕에 고요하기 그지없는 초원삼림지대에서 느긋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고산화원지대에 내려 보라. 노랑. 주황. 하얀색 등 고산 들꽃 천지인 평원에서 넋을 잃는다. 멀리 보이는 백운봉과 마천우를 배경으로 펼쳐진 화원은 스위스 어느 초원지대보다 그 아름다움이 떨어지지 않겠다. 여기저기서 경탄의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고요함을 깨운다.
백운봉 산장에 오후 6시 30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씻고 저녁 먹으니 밤8시가 넘었고, 내일 본격 서북능선 종주를 대비해 베낭을 꾸리고 하다보니 한숨도 못 잤는데, 어느덧 자정이 가까왔다.
□ 천지의 일출을 보다 □
* 7월 14일(수) 새벽 0시 30분 기상, 1시에 베낭을 울러메고 버스로 중국국경수비대까지 이동하였다. 거기서 중국군의 안내와 트럭으로 5호경계비 밑까지 꼬불꼬불 산길을 올랐다. 중간 시동이 꺼질 것을 대비해(어제 2.3조는 도중 시동이 꺼져 애를 먹었단다.) 7명씩 두번이나 내려 지프에 옮겨 타고, 트럭과 더불어 올라 간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둡고 동서남북이 어딘지 분간이 어렵다. 별빛만이 아름답게 빛나고, 차가운 새벽 바람이 거세다. 내 일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별들을 구경하긴 처음이고, 그 숫자도 제일 많을 것이다. 간간히 떨어지는 별동별의 빛줄기가 오늘 산행은 무사 산행을 예고하듯 드문드문 눈에 띈다.
트럭에서 내리자 마자 잰 발걸음으로 오르막 길을 30분가량 오르니 5호경계비가 보인다. 먼동이 트는 것 같았다. 새벽 03시 40분. 일출은 04시 15분 전후란다.
여명이 밝아 온다. 비류봉과 장군봉 사이로 구름이 약간 걸려 있고, 일출이 다가올 수록 구름들이 붉게 물들고, 천지의 빛깔도 진보라에서 점점 붉어진다. 해는 구름 속에서 약간 보였다가 숨고, 숨었다가 다시 나온다.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박두진 선생의 시가 절로 되내여진다.“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고운 해야 솟아라. 산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윽고, 해는 제모습을 다 보여 준다. 천지 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일순, 왼편 마천우(摩天隅:2691m) 주변의 구름들이 빠르게 쌓였다가 사라지고, 어둠도 서서히 가신다. 한동안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천지의 물결들을 응시하면서 나는 돼 묻는다.
왜 이렇게 먼데를 돌고 돌아 천지의 일출을 보면서 환호하고,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나? 그것도 중국땅을 디디고서 말이다. 5호경계비에서 오른쪽 발만 내디뎌도 북한땅인데, 장군봉(2749m)에서 일출을 보고 해발봉(2719m), 제비봉(2549m), 와호봉(2566m), 제운봉(2603m)을 거쳐, 바로 이 지점을 밟고 서북능선을 타면 얼마나 멋 있으랴!
비극이다. 한편 화도 난다. 나는 나이 50이 다되어, 21세기를 코앞에 두고서야, 천지 일출을 보게 된 것이 행운일까? 난, 50년 동안 무엇을 위해서 아웅다웅하며 살아 왔던가? 내 인생을 낭비한 죄를 묻지도 않고, 자식들에게 무엇을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쳐 왔던가? 그리고, 우리의 현대사 50년을 우리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서북능선을 종주하다 □
-천지를 또 보고, 광활한 초원지대와 만주벌판을 바라보면서-
* 만감이 교차하고, 벅찬 흥분과 회환을 뒤로하고 5호경계비를 04시35분에 내려섰다. 본격적으로 백두산 서북능선 종주에 들어갔다. Guide들은 여기에서 자신없는 사람들은 트럭타고 하산하라고 몇번이나 종용한다. 철화는 우리에게 말도 없이 작심하고, 이미 트럭 있는 곳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려 가고 있었다.
* 5호경계비 안부에서 북서쪽 우뚝 선 봉우리 마천우(2691m)는 천지의 제일 서쪽 끝봉이요 중국령 백두산 최고봉이다. 비탈에는 한 뼘 정도 높이의 작은 나무가 빽빽이 자라 융단과 같고, 야생화들이 강한 바람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마천우와 청석봉(靑石峰:2662m 일명 玉柱峰)사이의 언덕자락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고, 강하게 때리는 바람결에 청석봉 대암벽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청석봉 서벽은 너무 위험해서 오를 수 없고, 그보다 아래로 돌아 간다. 작은 화산암 자갈지대이고 급경사여서 모두들 초긴장들이고 조심조심한다. 앞서가던 서병일. 오성학. 이종현 등은 더욱 조심한다(철화는 5호경계비에서 산문으로 돌아가 이도백하로 간 것이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청석봉을 가까스로 내려와 안부에 도착하여 백운봉(白雲峰:2690m)을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자하 계곡이 앞에 놓여 있으니 해발 2000m 훨씬 밑까지 도로 내려 갔다가(대략 800m 고도차라함) 둘러서 백운봉까지 계속 비탈길을 올라야 한단다. 서북능선 종주 최대 힘든 코스라고 한다.
* 1시간 가량 내려가니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신기하였다. 너털지대이고 돌조각들로만 이루어진 경사면에서 천지수면(보통 2200m 안팎)보다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져 개울을 이루는 이곳이 식수 확보의 유일한 곳이라 한다. 물도 맑고 맛도 썩 좋았다(어디에 수맥이 있어 나오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함. 이럴 줄 알았다면 무겁게 식수 2ℓ를 다 짊어지고 오지 않았는데...).
경사면을 갈之자형으로 오르고 또 오르길 1시간30분, 저멀리 봉우리가 보이는데 백운봉인가 했더니 가이드는 아니라고 한다. 맥이 빠진다. 위험한 낙석지대를 꾸불꾸불 한참이나 오르니 백운봉은 그 자태를 들이 내민다. 꼬박 2시간 반을 올라왔다.
고산화원에서 보았을 땐 구름을 이고 있는 듯한 부드러운(대머리를 연상시킴) 봉우리같았는데, 발길을 닿으니 위험천만한 봉우리이고, 푸썩돌로 된 능선이다. 아슬아슬하여 돌풍이라도 만나면, 오른쪽은 천지쪽 천애절벽, 왼쪽은 금방 미끄럼을 탈 것 같은 작은 암석들의 비탈사면으로 대단히 위험한 곳이라 한다(오성학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중간에서 가로 질러 녹명봉 가는 안부로 가이드 1명과 함께 먼저 갔다). 그래도 천지를 한눈에 다시 보니 더없이 반가왔다. 오늘 날씨가 적당히 해를 가렸다 말았다 하고 선선한 바람도 간혹 불어 이 난코스를 비교적 쉽게 통과했다고 선두대장 이혜석(알 펜 투어 사장)선배는 말했다. 그늘 하나 없는 지대를 땡볕에 오르면 거의가 기진맥진한단다(그래서 식수를 넉넉히 준비하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듯 싶다).
* 오전 10시경 가까스로 백운봉을 내려서고, 녹명봉 가는 안부로 향하는데 이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지나온 길에 비하면 양반이다. 오른쪽은 천지의 푸른물, 왼쪽으로 광대한 초원과 저멀리 만주벌판으로 이어진 장대한 시야가 시원스럽다. 남 이(南 怡)가 백두산에 올라 호방한 시를 짓고(이 시를 개작한 한명회.유자광의 모함으로 그는 역모에 몰려 26세 나이에 죽었다), 광개토대왕이 저 광활한 땅을 왜 평정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는 언젠가 과연 저 더넓은 옛 땅을 도로 찾을 수는 있을까?
*녹명봉(鹿鳴峰:2603m 일명芝般峰)가는 안부에서 도시락으로 이른 점심을 먹으며 긴장을 푼다. 모두들 맛있게 거진 다 비운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코스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날등을 타는 곳이 조금 있어 바람이 세면 아주 위험하단다. 천지 쪽은 눈처마처럼 활처럼 휘어진 절벽이요 왼쪽은 위험한 낙석지대이다. 너털지대를 어렵게 지나, 쉬엄쉬엄 천지도 보고 만주벌판을 바라보면서 차일봉(遮日峰:2596m 일명觀日峰)쪽으로 휘돌아 산행을 계속했다. 중간 쉬면서 뒹굴고 싶도록 펼쳐진 초원지대는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못지 않았다. 꽃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 차일봉에 이르니, 저멀리 천문봉이 보이고 장백폭포를 이루는 승사하, 그 하류부인 이도백하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급경사 돌밭지대를 잠깐 지나니 풀과 작은 수목이 뒤섞인 융단지대가 시작된다. 온통 꽃밭이다. 정말 미안해서 발을 디딜 수가 없다. 그러나, 따로 길이 나 있지 않으니 어쩌랴! 천지의 물빛과 하늘의 구름이 은은한 보석처럼 어울려 아름답다. 이곳을 아내에게 보여 주지 못해, 아쉽고 또한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가지 않아 자그마한 폭포가 나타났다. 옥벽폭포다. 바로 언덕 위에서 옥벽폭포와 장백폭포를 동시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여기서 부터는 수림이 시작되고, 1시간 내려서니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려 있는 소천지가 나타났다. 13시55분 소천지에 닿고, 장백폭포로 이어진 도로가에 내려서 두견산장에 도착하니, 다른조(2.3조) 동문들이 박수로 반긴다. 온통 땀 투성이다. 오로지 세수, 시원한 맥주 한 컵만이 그리웠던 순간었다.
백두산 서북능선 종주를 9시간30분만에 해내었다. 날씨도 우리를 도와 주었다.
* 두견산장에서 후미가 도착하자 마자 이도백하로 향했다. 오랜만에 1.2.3.4조 전원이 모여, 고려식당에서 풍성한 음식과 산천어탕(담백하고 국물은 구수하였다)으로 반주를 곁들며 저녁을 하고,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친 축하겸 위로(철화는 오후 내내 이도백하 호텔에서 잤다고 함)차 우리 일행 7명(영락군과 종현은 일찍 자고...)은 읍내 술집으로 향했다. 한족 아가씨들의 정열같은 몸짓과 유혹을 끝내 뿌리치느라 우리 일행은 한참이나 의견이 분분했다. 옛날 마적의 후예들이 많은 이곳에서 객고에 젖어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하겠는가도 싶었다. 기골이 크고 늘씬하고 엉덩이가 위로 치솟은 몸매의 한족 아가씨들은 사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원성(?)을 들어가며 조선족 가이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과감히 숙소로 돌아 왔다. 자정이 다 되고 있었다.
□ 용정 그리고 두만강... □
* 7월15일(목), 이도백하 공상은행호텔에서 아침 7시30분 연길로 이동하였다. 모두들 곤하게 차안에서 자고 있었다. 용정에 가까이 오니, 오른편으로 ‘선구자’의 구절에 나오는 일송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 가 볼수는 없었다. 한국의 모단체가 일송정 입구에 한글로(글귀는 구체적으로 모름) 무슨 비같은 것을 세웠는데, 중국 당국이 철거하고 앞으로는 한국사람들의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지금은 여기가 엄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인데, 왜 그런 철없는 일을 저질러 한치 앞도 못보는 공명심으로 차후에 오가는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혀 멀리서 바라 보게만 만들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중국 당국자라도 그랬을 것이다. 일송정을 멀리서 사진 찍고 있는데, 사방에서 조선족(실상은 조선민족인데, 중국은‘민’자를 빼버렸다) 아줌마들이 기념품과 삶은 옥수수를 사라고 반강제적인 애걸을 한다. 한편으로 언찮고 한편으론 연민의 정이 솟아 오른다.
* 용정 시내로 접어 들었다. 조선족이 제일 많이 사나, 연변조선족자치구에서 가난한 곳 중의 하나인 용정, 일제 시대 때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인 용정,‘선구자’에 나오는 혜란강은 천년 만년 흐를 듯한 옥빛 띤 강물도 아니요 도도한 장강도 아니었고, 용문교는 겨우 200m도 못 미치는 평범한 시골 냇가의 다리 정도였다.
용정 중학교의 실상은 기대치보다 훨씬 못 미쳤다. 우리네 읍내 학교 정도의 시설이고 역사관에 대한 진열과 사진의 상태 등도 듣던 바에 비하면 너무 기대 이하였다. 다만, 교정의 윤동주(尹東柱) 시비(詩碑)가 상징처럼 서 있고, 오히려 북적대고 더 신경 쓰는 곳은 1층의 기념품 판매장이어서 입맛이 씁쓰레했다. 그래도 딸을 위해 윤동주 시집을 한권 샀고, 우리 일행은 만원씩 걷어 헌금도 했다.
물론, 중국 당국의 경계(?)의 시선도 있겠지만, 우리가 여기에 애정을 쏟는다면 좀더 다른 각도가 있지 않겠는가? 용정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평강평야(쌀은 중국 동북부 제일품으로 유명하다)는 발해의 도읍지가 아니던가? 그래도 여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상징적인 곳이다. 가이드인 김형민씨는 용정의 실상을 차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우리가 고국에 돌아가면 용정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가져 주었으면 했다.
* 연길로 점심 식사 가는 도중, 느닷없이 곰사육장을 견학 시킨다. 중국 당국의 속셈이고, 가이드들의 장사 속이겠지만 좀 심했다. 웅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인들의 최대 약점을 이용하려 든다. 그래도 즉석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떻게 하랴! 웅담이니 웅즙이니 그것 먹는다고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나이든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도 사니, 그것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이 시골 구석에 VISA 카드도 받아주니, 그들의 장사 속에 혀를 내 두룰 수 밖에....연길에서 냉면(서울의 3인분은 되어 보였고, 그릇은 과장하여 대야만 했다)을 배터지도록 먹고, 두만강으로 향했다. 북한땅 회령의 건너편 삼합(三合)까지.
* 300m 조금 넘는 다리 하나를 두고, 삼합과 회령 사이에 국경을 이룬다. 다리 밑으로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북한쪽에서 물건을 실은 중국 트럭들이 몇몇 건너온다.
한반도 북쪽 끄트머리 회령 바로 앞까지 와서, 바로 저 다리를 못 건너니 이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이 외진 곳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들만 신바람이 나지 않은가 말이다. 돌아오는 도중 두만강 한지점에서 잠깐 내렸다.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도 없고,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가 돌아 오지 못할 만큼 큰 강도 아니었다. 바로 건너 뛰면 왔다 갔다할 수 있는 넓은 개울 정도의 폭에 흐린 물만 흐르고, 그 건너 북한땅 들녁에 집들이 평화로와 보인다. 그 뒤 산자락에는 요란한 구호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구호가 밥 먹여 주나? 그러나, 이걸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 비극의 현실을 남.북한 위정자들은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향은 있는지 작금의 꼬락서니를 볼진데 회의적이다. 21세기가 내일 모레인데, 가슴이 답답하였다. 두만강은 우리 마음 속에 한(恨)이 되어 흐르고 있는 애닯은 상징의 강일러라!
* 연길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린다. 개고기 식당 간판에 일부 잔인한(?) 녀석들은(상한. 철화. 종현. 성학. 진호) 벌써 연신 입맛을 다신다. 저녁은 당고기탕에 닭고기, 가제미구이등 풍성하였다. 우리돈 1400원하는 빼갈이 또한 그저 그만이었고, 중국 동북부 조선족자치구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뻐끈찌끈했다. 그러나, 연길의 시장 구석 등 조선족의 생활상을 직접 대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연길 공항(최근 신축하고 한국인들 많이 온다고 함)에서 북경으로 이륙하는 순간, 빗줄기가 거세다. 백두산 산행을 마친 뒤에 내리기에 우리에게는 행운의 비요, 이곳 농민에게는 가뭄의 단비였으리라. 북경 곤륜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 일행은 내 방에서 연길에서 사 온 빼갈과 청진산 황태를 고추장에 발라 먹으면서, 낄낄거리다 새벽 2시경 잤다.
□ 조상의 덕(?)을 톡톡히 보는 북경 □
* 7월16일(금), 종현이는 사업 관련차 활어빈으로 아침 일찍 떠났고, 대신 부인이 어제 북경에 도착하여 자금성 관광 차 우리와 합류했다. 이른 아침을 대충 먹고, 천안문 광장으로 갔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과 차량들로 북적 거린다. 천안문 사태! 중국인들은 더 이상 그것을 지금 논할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월이 가면 역사가 말해 주는데, 지금 당장 아웅다웅 않는다고 한다. 만만디의 여유로움인가?
* 영화‘마지막 황제’에서 보았던 자금성을 실제 보았다. 규모와 웅장함과 화려함에 있어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명(明). 청(淸) 양대의 황궁으로 쓰던 곳, 9문을 지나야만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요, 한편으론 황제를 바보로 만들기에 그지없이 좋았던 곳...그 역사의 세세한 부문은 문외한인 내가 논할 바가 아니고, 명나라 3대 황제가 조카를 밀어 내고 정권을 장악하여 자금성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이전은 북경이 천하를 넣는 요충이 아니라, 장안(長安)이었다고 한다. 2시간 만에 그 드넓은 자금성을 어찌 다 구경할 수가 있으랴! 주마간산으로 쓱쓱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 북경 서북쪽에 위치한 天下第一雄門을 거쳐 (四通)八達嶺水關에 도착했다. 明대에 쌓았다는 이쪽 장성을 비롯해 6518㎞의 만리장성은 중국인의 힘이요 저력이며 만만디의 끈기이다. 서쪽 가욕관에서 동쪽 산해관까지 1800여년에 걸쳐 쌓고 보수한 만리장성을 세계 4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할 만 했다. 성루 2개를 오르내리는 데도 땀이 비오듯 하는데, 그것을 쌓고 이었으니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 만리장성을 종주했다는 모험가(?)는 아직도 한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농담으로 우리 서울고 산우회가 최초로 종주하면 어떠하냐고 누군가 말해서 모두가 껄껄 웃었다.
이화원으로 가는 도중, 점심 식사하던 백화점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관광객의 주머니를 탐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의지를 굳게 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의 선물 하나는 들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그만 그 유혹에 넘어 가고 말았다.
*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 별장(Summer Palace)이다. 48년 동안 어린 황제를 셋이나 거느리며 절대 권력을 누리면서 결국 淸을 망하게 했던 여장부요 독부였던 그녀의 여름 쉼터를 위해, 여의도보다 큰 곳을 인공 호수를 만들고 산을 쌓고, 자기는 자금성에서 배로 유유히 드나 들고, 어린 황제는 유패 시켜 놓았던 곳이 지금은 중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올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50돌을 맞이하여 보수하고 단청을 칠하고 하는 등 야단 법석이다.
하기사 북경은 권력자 조상들이 백성의 고혈을 빨아 이루어 놓은 것을 현재의 중국 인민들이 그 조상의 덕(?)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선견지명(?)이 있어도 이만은 해야 하지 않을까? 자금성과 만리장성이 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태후는 신해혁명으로 청이 망했어도 혁명군에 사살되지 않고, 7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 했다고 한다. 혁명군이 꼭 필요했던 비자금(?)같은 최후의 카드로 목숨을 건졌을까? 그녀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그 비결을 알고 싶다.
* 오리구이로 천하제일이라는 北京全聚德 식당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식당이라 한다. 이름에 걸맞게 맛도 별미였다. 북경 기예단 관람은 그저 그랬다. 지친 몸들을 이끌고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이번 여행의 최후의 밤을 성학이 방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낄낄거렸다.
□ 에필로그 □
* 7월17일(토) 아침, 돗대기 시장 같이 붐비는 북경 공항에서 지루한 출국 수속을 마쳤으나, CA123편은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로 이륙하였다. 배탈이 나 기내에서 무진 고생했다. 오후 1시30분(한국시각) 김포 공항에 도착하니 아늑하고 편안했다. 어디를 가던 내 땅 내 조국이 제일인 듯 싶다.
* 만주벌판은 옛 고구려 땅이었다. 백두산은 분명 우리의 땅이다. 우리대가 아니라도 그 다음, 그 다음대라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 이 일대에 조선족이 200만이 넘게 살고 있다. 50평생을 나는 무엇을 보고 무얼하고 살아 왔나? 남의 땅을 밟고 돌고 돌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북능선, 그것도 지금은 중국 영토인데, 종주를 했다고 그 하나만으로 위안 삼기엔 가슴이 너무 텅 빈 것 같았다.
따라서, 나는 여유가 생기고 기회가 있으면 백두산 서북능선을 또 한번 타고 싶다.
소천지에서 거꾸로 5호경계비까지 한번 더 가고 싶다. 내 자식과 아내를 동반하여 가고 싶다. 아무리 책에서, TV에서 만주벌판과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옛 고구려의 광활함을 장광설로 늘어 놓으면 무엇하랴? 남의 땅을 밟고 돌고 돌아 백두산에 오르는 것이 경비와 시간이 얼마나 들고 불편한 지를 안다면, 통일이 빨리 되어야 이러한 불편도 없고 시간과 경비도 절약되겠구나 하고 피부로 느끼지 않겠는가?
또한 우리의 후대들에게 백두산을 어떤 방법이던지 많이 보게하고 밟게 해야 한다고 본다. 천지의 물을 만져 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자연히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답을 스스로 만들어 낼 것이다. 아마도 지난 50년간 현대사에서 그들의 선대들이 하였던 어리석은 짓거리를 반복하지는 않으리라. 학교를 결석 시켜가며 아들을 동행했던 진호의 과단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백두산은 크고 당당했다. 천지의 물은 오늘도 변함없이 차고, 그를 둘러싼 봉우리들은 도도하게 서 있다. 내 체력이 견뎌 낼 수 있을 때, 다행히 북한땅 서남루트를 종주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도 통일이 되어 온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서북루트를 다시 종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나는 행운아 이리라.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열심히 건강하게 살 것이고, 백두대간(비록 진부령까지지만)을 진진하게 탈 것이다. ♨♨♨
▶ 여 신 ◀
백두산 산행을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해 준 서울고 동창 산우회 집행부 선배님들께 우선 감사 드립니다. 또한 이번 산행을 기획하고 집행한 「알 펜 투어」이혜석 사장님과 직원은 물론, 특히 4조 가이드를 맡았던 송태호 청주지사장과 연변장백산삼림국제여행사 한국부 부장 김형문님(박식과 잇빨로 내내 친절하고 재미 있었음),그리고 또한명의 현지 조선족 가이드(이름이 생각 않남)에게도 무사 산행을 할 수 있게끔 도와 주시고 배려해 주신데 대하여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뜻 전해 드립니다.
▣ 백 두 산 서 북 능 선 종 주 기 ▣
- 백 두 산 완 전 종 주 및 북 경 관 광-
`99년 7월 11일 ~ 7월 17일
□ 이 규 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