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서북종주기

새벽 2시에 산장을 떠났다. 산행대장의 찝차가 앞장서서 불을 밝히고 승용차, 미니버스 2대에 분승한 산행 팀이 뒤를 따랐다. 모두들 눈을 감고 있는 듯싶다. 밤새 지척지척 내리던 비가 한동안 소나기로 퍼붓는 빗줄기 소리를 들으며 서북종주의 스케줄이 혹시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설령 강행한다 하여도 빗속을 헤치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서북종주를 해낼 수 있을지 --일말의 불안감 속에 잠을 설쳤을 것이다.

의외로 맑게 개어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산행차량의 대열은 산길을 굽이굽이 달려 노으배 주차장에 당도했다. 아직도 사방가득 어둠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안개인지 비구름인지 모르는 짙은 운무가 밀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이마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어느새 실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5호 경계비로 오르는 돌계단 앞에서 3천 원짜리 비닐바지를 구입하여 미리 착용하고 배낭 안쪽에서 우의를 꺼내 허리춤에 동여맨 후 나는 심호흡을 하며 산행의 첫 발을 내딛었다. 어둠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헤드렌턴 불빛이 백두산 산록을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돌계단이 없었다고 한다. 야생화와 풀 이끼를 밟으며 오르던 길을 돌계단을 놓아 경계비에 이르게 한 모양이다. 금년 들어 겨우 몇  번 산행을 시작한 나 같은 초짜를 위한 배려이겠지만 해발 이천 미터를 넘는 고지에서 만나는 돌계단은 웬 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낯 설은 모습이었다.

반보씩 스로우!스로우! 산행대장의 여유로운 구령에 맞추어가며 땅바닥에 바싹 엎드린 야생화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도 보고 여덟팔자로  산보하듯 오르다보니 어느새 경계비에 다다랐다. 바로 앞이 천지라 하여 급한 마음에 달려드는데 가이드가 기겁을 하며 만류했다. 아뿔싸, 코앞은 90도 각도의 수천길 낭떠러지였다. 멀리 보이는 것이 장군봉,비류봉이라했고 그 아래가 천지라 하였으나 보이는 건 가득한 구름뿐 천지는 구름 속에 신비한  모습을 감춘 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서자 기대와는 달리 조그마한 5호 경계비의 모습이 보였다. 여느 무덤 앞에서도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비석정도의 크기였다.. “조선”이라는 낯선 비문 앞에서 우리는 포즈를 잡기도 하고 어설픈 철망을 넘어가 북한 땅을 밟아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보안법 위반이라고 소리 질렀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지 뭐-나는 이천 원짜리 커피를 음미하며 북한군 초소가 있다는 아득한 산록을 마냥 바라보았다. 가까운 길로 오지 못하고 이국땅 먼 길을 돌고 돌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조국의 백두산을 바라보아야하는 처연함에 잠시 가슴이 아련했다.

어느덧 사위가 밝아오고 있었다. 원래는 이곳에서 신비롭고 경이롭다는 백두산의 일출을 맞이하기로 되어 있었다. 꼭두새벽인 2시부터 서둘러 출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3대가 업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일출의 기운은 어디에도 없었다. 쌀쌀한 기운 속에 시커먼 비구름만 가득했다. 한바탕 폭우가 밀려들 것 같은 두려움에 쫓기며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떠나기로 하였다.

서북종주에 자신이 없는 10여명의 B조는 마천루로 내려가서 곧장 천지에 발을 담그고 놀면서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망천우,청석봉을 거쳐서 백운봉 아래로 내려간 후 다시 백운봉 정상으로 오르고 녹명봉 차일봉을 지나서 달문으로 내려가면 비로소 천지인데 우리들 속도로는 10시간 이상의 산행이라 했다. 잔설지대나 내리막 너덜지대에서는 사고 위험이 크니 각별히 주의해야한다는 가이드의 당부와 더불어 지금이라도 B팀 합류가 가능하니 잘 판단하라는 산행대장의 협박이 이어졌지만 6개월 동안을 다지고 다진 서북종주의 결의를 그 누가 꺾을 수 있단 말인가 .겨우 대 여섯 번의 산행경험이 전부이지만 나는 해 낼 것이다. 넘어지고 부서지고 깨어지더라도 서북종주를 이루어낼 것이며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정기를 가슴가득 안고 돌아갈 것이다. 자! 가자!

우리의 종주코스는 분화구인 천지주변의 서쪽 스로프를 돌아서 달문의 천지로 내려가는 것인데 청석봉에서 백운봉은 바로 가지 못하고 하산하였다가 다시 올라가서 백운봉 정상을 돌아서 녹명봉으로 향하는데 백운봉 정상에 오르는 2-3시간이 고비가 될 것이라 하였다.어쨌든 망천우,청석봉을 지나 백운봉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의 산행은 비교적 여유로웠고 넉넉하였다. 오락가락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다행히 바람은 잠잠하였다. 이곳에 본격적인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고 했다.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체 뽑힌 모습으로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던 금강대협곡의 모습으로 추측 건데 100k이상의 거구라 하여도 별 수 없을 것이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45도 각도로 누워가듯 조심해야지 아차하면 산비탈 아래로 나뒹군다고 가이드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람아 제발 오늘만 멈추어 다오. 비마져 내리는데 너까지 불어오면 -----

백두산 분화구인 천지 주변은 산을 찌르는 기암괴석들이 병풍을 두르듯 펼쳐진 가운데 거대한 운해가 끊임없이 몰려가고 또 몰려들고 있었다. 이따금 눈부신 햇살이 보이기도 하였으나 순식간에 돌변한 먹구름 사이로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산 아래 먼 곳에서 바라보면서 비단결처럼 포근하게 느꼈던 구름의 실체가 이것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허망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 맞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기고 살아야 해. 가까이 가서 기어이 내손에 움켜쥐자고 하면 그 순간에 모든 것들은 형체도 없이 부서지면서 사라져 버리는 거야. 나는 산속의 현자인양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발아래 펼쳐진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듯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능선이 끊어진 청석봉에서 백운봉까지 내려가는 길엔 이끼가 가득하여 푹신푹신한 융단의 감촉을 즐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방가득 펼쳐진 야생화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동양화를 발아래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무질서하게 불쑥불쑥 솟아오른 야생화의 군락이 산록 전체를 하얀색,노란색,분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사진작가인 김 영화씨가 1000만원짜리 사진기를 들이대며 이것은 범꼬리,,저것은 개불알, 또 요것은 꿩의 다리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저기 하얀꽃!와!저기 노란꽃!으매 저기 보라색 !고작 이정도가 내 수준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야생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사진작가만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백두산의 야생화는 6,7,8월의 3개월 동안만 볼 수 있는데 작년,재작년에는 거의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삼 년 전에 내린 폭설의 양이 너무 어마어마했었고 여름이 다되도록 녹지 않아서 야생화들이 멸종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해가 지난 이번 여름이 되자 그동안 못다핀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듯 오히려 왕성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억샌 생명력이다. 하기야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샘은 솟고 ,산불로 재만 남은 시커먼 언덕에서도 새싹은 돋아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고비라고 하는 백운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났다. 여기만 잘 올라가서 정상에 서면 다음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라는데 오르막의 급함이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오르고 또 오르기를 2-3시간해야 한다니 제법 긴장되기 시작했다. 겨우 30분을 오르는데도 발이 무거웠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가늘게 흩어지며 날리던 빗방울마저 돌변하여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반듯하던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선두와 후미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자 후미까지 내려온 산행대장이 걱정스러운 듯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노랗게 피어나는 금매화를 디카에 담는 여유를 보여주며 짐짓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어렵게 어렵게 1시간 이상을 오르도록 정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벼랑을 허덕허덕 올라서면서 저 등성이만 넘으면 내리막이려니 하였다. 그러나 어렵게 등성이에 올라서면 오르막이 다시 나타났고 끝자락인 듯 싶은 곳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힌체 남은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비에 젖은 등산화가 무거워지면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산행대장이 우리 쪽을 향하여 무어라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간격을 유지하고 빨리 따라 붙으라는 소리련만 후미에 쳐진 우리들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아무리 용을 써도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십여미터 올라가서 멈추어 선체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시 몇 걸음 나아가보지만 이내 멈추어 선체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산우회 멤버들 중 서너 명도 우리들 후미구룹에 섞여 바동거리고 있었다. 대열을 유지하라는 산행대장의 고함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운무 속에서 대열을 이탈하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걸음씩 나가고 있는 후미 대원들중 누군가가 심장마비라도 일으키면 어떡할 것인가. 여기는 중국 땅이라 헬리콥터도 오지 못할 것이다. 후미를 재촉하기 보다는 선두가 답답하더라도 멈추어 기다리는 여유로움을 보여줄줄 알아야 진정한 산악인일 것이다. 어쨌든 백운봉은 중국쪽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2690m)가 아닌가!

선두와 후미의 치열한 신경전을 치루며  3시간 이상을 어렵게 올라가니 비로소 백운봉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부터는 북쪽의 능선을 따라가는 평탄한 코스라 했다.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고바를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에 배낭도 풀지 못하고 빗속에 여덟팔자로  누워버렸다. 신선한 빗방울이 진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전신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고진감래의 달콤한 감회가 밀려왔다. 이대로 마냥 퍼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산행대장이 호락호락 내버려 둘리 없었다..<자!출발 !여기서 퍼질러지면 힘들다.모두 알어나!>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모두들 꿈적도 하지 않았다. 독이 오른 산행대장이 빽 소리를 질렀다.<저기 먹구름 보라구!폭우 쏟아지기 전에 빨리 출발하자구!>늦게 도착한 후미대열은 죽을 맛이었다. 자기들이야 미리 도착해서 한숨 여유롭게 돌렸겠지만 우린 이제 막 도착해서 숨도 고르지 못하고 있는데---아니나 다를까.구세주가 나타났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교수님이었다.

<유격 훈련하러 온 것도 아닌데 왜이리 서둘러 --->옳소!나는 속으로만 옹알거리며 맞장구를 쳤다.<산도 보고, 꽃도 보고 구름도 보고 이러자고 산에 온거 아냐?에당초 약속했잖아. 반보반보씩 스로우 스로우 하겠다고-->뜻밖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반란군 대장 앞에 기가꺽인 산행대장의 표정은 한마디로 쌤통이었다.<너무 늦으면 스케쥴이 엉망이 되어버리잖아> 대답이 약간 궁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 교수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우리 교수님 기세좋게 몰아붙이며 <스케쥴이 뭔데!내려가서 목욕하고 밥 먹고 자는 것 말고 또 스케쥴 있어!>

아이고 고마워라. 어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골라가며 저렇게 잘 할까 어쨌든, 똑똑한 우리 교수님 덕분에 꿀 같은 휴식시간을 넉넉히 즐기고 난후 녹명봉을 향하여 여유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녹명봉에 이르는 길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산록을 연상시킬 만큼 끝없는 펑퍼짐한 사면의 연속이었다. 초록빛 양탄자가 하늘까지 펼쳐진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펼쳐진 야생화의 모습도 눈부셨고 멀리 보이는 녹명봉의 거대하고 장엄한 봉우리에 걸린 구름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선두와 후미 사이의 팽팽했던 신경전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우리는 도레미 송을 부르는 듯 경쾌하게 초원지대를 미끄러졌다. 2개의 거대한 봉우가 나타났고 그곳을 돌아 얼마를 가다보니 차일봉의 모습, 발아래 계곡에는 옥벽폭포가 흐른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며 얼마를 걸어가니 기괴한 모습의 거대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장기봉이란다. 봉우리 아래로 장백폭포가 떨어진다고 하였으나 아직 시야에 잡히지 않았고 대신 송하강으로 흐른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가 먼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달문으로 내려서는 길, 이제 30분  정도면 천지의 맑고 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놀면서 고단한 여정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늘진 왼편 가파른 비탈에는 아직 녹지 못한 거대한 얼음과 눈이 덮여있는 500m 정도의 너덜지대가 나타난 것이다. 앞서가던 가이드가 잔설지대를 쉽게 건너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발로 쿵쿵 밟으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건너기 쉽게 20센티 정도의 깊이로 눈 속에 구멍을 만들며 길을 낸 것이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별거 아니듯 싶은데 왜 저리 공을 들이나 싶었는데 막상 그 앞에 서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까닥 잘못해서 미끄러진 후 굴렀다 하면 70도 각도의 수천길 아래 벼랑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아찔한 지형이었다. 가이드도 위험하니 서지 말고 앉아서 기어가듯 조심조심 건너라 했다.

풀 한포기 잡을 것 없는 아찔한 얼음 벼랑의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지며 나는 자세를 낮추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아찔한 광경이 연출되고 말았다. 경계비에 오르기 전에 착용한 비닐바지가 눈에 미끄러지면서 내 몸이 순식간에 180도 뒤로 매달린 체 머리가 벼랑으로 향하고 말았다. 왼 발이 가이드가 파놓은 구멍을 밟고 있었던 것은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다. 등산화가 구멍에 박혀 내 몸을 지지해 주는 바람에 추락을 면하였던 것이다. 주위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켜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거꾸로 매달렸을 때 탈골이 되지 않았을까하여 쉽게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추락을 면한 마당에 탈골이면 어떤가. 조심스레 다리를 펴보았다. 의외로 말짱했다.

오 !하느님 !

나의 돌발 사고에 놀란 가이드가 잔설지대를 가로질러 밧줄을 맨 후 나머지 일행을 건너게 했다. 다행이도 모두가 무사하게 그곳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흔들거리는 바위들을 밟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아득한 벼랑을 내려가야 했다. 만일 뒤에서 누군가 잘못하여 돌을 굴리면 연쇄적인 충돌이 돌벼락을 만들며 앞서가는 사람들을 덮칠 형국이었다. 게다가 가파르기가 거의 60도 각도였다. 이런 곳에서 경험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차 하여 미끄러져서 굴렀다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데----20분이면 내려설 수 있다는 길을 기어가듯 조심조심 내려가느라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만일 폭우라도 내리는 가운데 우리가 그곳을 내려왔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5년 전 서북종주의 마지막 코스는 이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백두산의 서북종주를 위하여 반년 이상을 수고한 집행부가 사전 답사 없이 너덜지대를 마지막 코스로 택한 것은 옥의 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안전하게 너덜지대를 빠져나와 천지에 도착한 얼마 후, 우리가 내려온 그곳의 중턱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리면서 돌사태가 일어났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22명중 7-8명은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 수준인 초짜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

스릴과 서스펜스로 얼룩진 너덜지대를 빠져나와 결국 천지에 이르렀다. 새벽 2시에 산장을 출발했는데 오후 2시니 14시간이 걸린 샘이다.일반 관광객들은 장백폭포 아래의 매표소에서 1시간만 오르면 된다는데---- 천지의 모습은 장관 이상의 경이로움이었다. 해발 2600m이상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가운데 여의도 면적에 이른다는  거대한 분화구에 가득한 푸른 물결. 그 물아래 다시 떠오르는 해발봉,제비봉,백운봉,망천후,녹명봉--위로 거대한 운무들이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선조들이 <하늘에 있는 거대한 못>이라는 뜻으로 명명한 천지의 의미를 비로소 알듯하였다. 와이드 카메라(일반 사진기는 전경을 담을 수 없음)로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백두산 서파(서쪽사면)종주의 휘나레였다.장백폭포를 거쳐 숙소인 장백산 호텔로 내려갔다. 등소평이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가 호텔에 남긴 글을 소개한다.<부등장백산생종유감>백두산에 오르지 못하고 죽으면 유감이라는 뜻이었다.

글-박기석